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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우리 청송심가 이야기(10)

  • 기사승인 2019-11-25
  • 신문 138호(2019-11-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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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한 사랑은 모든 걸 이룬다

- 희수(喜壽)할아버지와 기생 일타홍(一朶紅)

 

沈厚燮(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얘야, 너는 앞으로 어떠한 사람과 만나 혼인할 것 같니?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자신의 배우자(配偶者)를 잘 만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을 거야.
우리 선조님들 가운데에 희수(喜壽, 1548~1622) 할아버지가 계셨어.  영의정을 지낸 연원(連源) 할아버지의 동생 봉원(逢源) 할아버지의 손자야. 봉원 할아버지도 동지동녕부사를 지냈고, 아버지 건(鍵) 할아버지도 충청도 어사로 나갔을 정도이니 희수 할아버지는 누가 봐도 뼈대 있는 집안의 당당한 자제(子弟)였지.
그런데 세 살 때에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가세가 기울자 잠시 방황을 한 듯 해.
희수 할아버지가 열다섯 살 때의 일이라고 해. 다 떨어진 옷에 헤진 갓을 쓰고 고관 자제들과 어울려 다녔대.
하루는 어느 재상 집 잔치에 갔는데 첫눈에 들어오는 여인을 보게 되었대.
이 여인이 바로 충청남도 금산(錦山) 출신의 기생 일타홍(一朶紅)이었어. 그 때 나이는 열일곱이었다고 해.
희수 할아버지가 일타홍의 곁에 앉아 농담을 하려하자 일타홍이 점잖게 시(詩)를 읊었어.

關關雎鳩 在河之洲(관관저구 재하지주)
窈窕淑女 君子好逑(요조숙녀 군자호구)

이 시는 <시경(詩經)> 첫머리에 나오는 ‘관저(關雎)’라는 노래였는데 ‘꽌꽌 우는 물새는 물가에서 노는데, 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짝이라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 노래의 뜻을 몰랐던 희수 할아버지는 멀뚱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러자 일타홍이 말했어.
“도련님, 댁이 어디인지요?
제가 나중에 잠시 찾아뵈어도 될 지요?”
이리하여 집으로 찾아온 일타홍은 희수할아버지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며 말했어.
“아드님은 지금 한창 글을 읽어야 할 시기인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아드님은 앞으로 큰일을 하실 분입니다. 제가 이 집으로 와서 아드님이 글을 읽도록 하려 합니다. 허락해 주소서.”
이리하여 일타홍은 그 동안 모은 돈까지 모두 내어놓으며 희수 할아버지에게 말했어.
“이것으로 당분간 양식은 마련할 수 있을 테니 아무 걱정 마시고 지금부터라도 글공부를 하소서.”
일타홍은 희수 할아버지에게 <천자문(千字文)>부터 읽게 했어.

그리고는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마주 앉지도 않았어. 부지런히 빨래하고 밭일을 하였어.
어쩌다가 희수 할아버지가 일타홍의 손이라도 잡아 보려하면 단호히 뿌리치며 말했어.
“대장부가 뜻을 세웠으면 기어이 이루셔야 합니다. 다음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읽으소서. 책을 다 읽으실 때까지는 제 옆에 오실 수 없습니다.”
이에 희수 할아버지도 열심히 노력했어. 깊이 생각하여 하나를 배우면 금방 열을 깨쳤어. 그리하여 희수 할아버지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에 마침내 <사서삼경(四書三經)>까지 모두 읽고 과거를 보아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어. 일타홍과 만난 지 7년이 되던 해였어. 그리고 뒤이어 2년 뒤 대과(大科)에도 급제하였어.
“이제 나는 그대와 혼인하고 싶소.”
그러나 일타홍은 뿌리치며 말했어.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생으로 지낸 적이 있습니다. 서방님은 양반집 자제이고 앞으로 나라의 큰일을 하셔야 할 테니 그에 걸맞은 양반집 규수와 혼인하소서. 저는 그저 곁에서 소리 없이 지내고자 할 뿐입니다.”
희수 할아버지의 어머니도 일타홍을 며느리로 삼고 싶었지만 일타홍은 한사코 손사래를 쳤어.
“서방님 앞길에 누가 되기 싫습니다. 서방님의 스승이신 노수신(盧守愼), 노극신(盧克愼) 선생 형제분의 집안에 좋은 규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희수 할아버지는 노극신 선생의 따님과 정식 혼례를 올렸어. 그러자 일타홍은 나이 어린 정식 부인에게 깍듯이 예를 올리며 집안 어른으로 모셨어.
세월이 지나 일타홍도 이제 서른여덟 살이 되었어.
“서방님, 청이 있습니다. 그 동안 오래 고향을 떠나있었더니 문득 고향이 보고 싶어집니다. 서방님께서 금산군수(錦山郡守)로 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희수 할아버지는 곧 임금에게 청하여 금산군수로 부임하게 되었어.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일타홍은 그만 병이 들고 말았어.
“서방님, 저는 이제 원이 없습니다. 서방님도 과거 급제하셨고, 저 또한 고향에 왔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안 될 말이오. 이제부터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아닙니다. 저는 그 동안 마음을 많이 조려 그런지 병이 깊어진 듯합니다. 저 때문에 서방님을 고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일타홍은 모든 음식을 끊고 마침내 숨을 거두고 말았어. 일타홍은 숨을 거두기 전에  ‘달을 보며(賞月)’라는 시(詩)를 한 편 남겼어.

亭亭新月最分明  우뚝 솟은 초승달 오늘따라 더욱 밝고
一片金光萬告情  한 조각 달빛은 만고에 정다워라.
無限世間今夜望  넓고 넓은 세상 오늘 밤 달을 보며
百年憂樂幾人情  백년의 슬픔과 즐거움 느끼는 이 몇일까.

희수 할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하였으나 소용없었어.

희수 할아버지도 일타홍을 보내며 시를 한 편 남겼어.

一朶芙蓉載柳車  한 떨기 고운 꽃이 버들상여에 실려
芳魂何事去躊躇  향기로운 혼이 가는 곳 더디기만 하네
錦江秋雨丹旌濕  금강에 가을비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
疑是佳人別淚餘  그리운 내 임의 눈물인가 보다.

희수 할아버지는 일타홍을 금산에 묻으며 ‘나중에 내가 죽거든 나의 무덤 앞으로 일타홍을 옮겨 묻으라. 고 유언하였어. 그리하여 지금의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흥리에 있는 희수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는 ‘一朶紅錦山李氏之壇(일타홍금산이씨지단)’ 이라는 제단이 세워지고, 비석 뒷면에는 위의 두 시가 나란히 새겨져 있단다.
희수 할아버지는 나랏일을 잘 보아 이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에까지 올랐단다.  아름다운 사랑은 이루지  못할것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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