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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숙공양부 강거민주부공 시향제

  • 기사승인 2019-10-21
  • 신문 138호(2019-10-2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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恭淑公養父康居敏主簿時享祭

 

강거민주부공 시향 / 배위 전씨부인 시향

10월 19일(음 9월21일)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묘전에서 신천강씨 일가와 공숙공 후손 70여명이 참석하여 공숙공 양부인 강거민주부공의 추향제가 있었다.

○ 초 헌 관 : 심충택 공숙공종회회장

○ 아 헌 관 : 강종진 신천강씨종중회장

○ 종 헌 관 : 심영태

◉ 配位 全氏夫人 제향

○ 초 헌 관 : 심진호 선산종회회장

○ 아 헌 관 : 강일진 신천강씨종중총무

○ 종 헌 관 : 심상열 공숙공종회부회장

○ 축 관 : 심양섭 공숙공종회이사

○ 집 례 : 심광섭 공숙공종회총무이사

공숙공 휘: 회(恭肅公 諱: 澮) 자는 청보(淸甫)이다.

안효공의 둘째 아드님으로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생이시다.

아버지 안효공(安孝公)께서 무술옥사(戊戌獄事)로 인하여 1418년 자진(自盡) 하실 때 公은 돌도 지나지 않은 젖먹이 갓난아이로서 더욱이 어머니 삼한국대부인 순흥안씨(三韓國大夫人 順興安氏) 마저 천민(賤民)이 되자 소헌왕후께서 주선하신 유모(乳母) 등에 업혀 피난길을 떠나게 되었다.

경북선산(慶北善山) 땅에 이르러 강거민 주부(康居敏 主簿)와 전씨 부인(全氏夫人)을 만나 양육(養育) 받으면서 글공부에 열중하실 수 있었다.

판충추원사 대경공(戴敬公:휘는 金連枝)의 따님 원주김씨(原州金氏)에게 장가들었으며 한때 전남 곡성의 고달(古達)에서 은거하신 일이 있어 지금도 그곳에 유허비(遺墟碑)가 건립되어 있다.

공께서는 무술옥사에 아버지 安孝公 대문에 세종 연대에는 등용되지 못하다가 文宗이 즉위한 이듬해인 1451년 8월에 34세가 되어 처음으로 아우 정이공(靖夷公 諱:決)과 함께 돈영부 주부에 등용되어 관직에 오르셨다.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시고 1466년에 죄의정(左議政)에 제수되고 이듬해에 영의정부사(領議政:正一品)에 오르시어 영 춘추관, 예문관, 홍문관 관상감사와 영 세자시강원을 겸임하시면서 一人地下萬人之上의 자리에서

정사(政事)를 베푸셨다.

이로써 三代를 이은 정승(政丞)집안의 명예를 얻게 되었고,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 난을 평정하는데 큰 업적을 남기셨다.

이 무렵 양모 전씨 부인의 질병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영의정을 사임하고 영중추원사의 신분으로 선산에 내려가 간병에 힘서 쾌유한 다음 상경 하셨다.

1474년 양모(養母) 전씨 부인이 별세하자 다시 선산으로 내려가 정성으로 삼년복상(三年服喪)을 마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고 출천(出天) 대효(大孝)라고 칭찬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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