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 대전사

주왕산과 대전사
큰집이 보광전이다


주방동천 문림천석
주왕산 주왕천변에 암각자


주왕산은 해발 720미터로서 동해를 끼고 남하하던 태백산맥이, 경상북도 지방의 중간에 이르러 멈춘듯 산세가 웅장하고 기암괴석(奇岩怪石)과 깊은 계곡에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은 군데 군데 폭포와 담소를 이루었으며, 봄에는 만산에 꽃이 가득하여 향기가 그윽하고 여름의 우거진 녹음과, 가을에는 온통 천연색으로 물들여 놓은 단풍은 절경 아닌것이 없으니, 가이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우고 있는 바, 靑松읍에서 11키로쯤 동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깊은 전설을 지니고 있는 周王山은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수려하다 하여, 옛적 이름은 석병산(石屛山)이라 불리어 오다가, 신라의 왕자 주원왕(周元王)이 양위한 후에, 이 곳에서 기거하면서 수도하였다 하여 주방산(周房山) 또는 대둔산(大遯山)이라 하였고, 또한 고려때 중국의 동쪽에 있던 진(晋)나라에서 복야상서(僕射尙書) 벼슬을 지낸 주의(周휆)의 후손 주도(周鍍)가 진나라를 회복코자, 자칭 후주천왕(后周天王)이라 일컬었고 군사를 일으켜, 당(唐)나라 덕종황제(德宗皇帝) 15年에 당나라 서울 장안에 쳐들어 갔다가, 당나라 장군 곽자의(郭子儀)에게 패해서 요동을 거쳐 산세가 험하여 천연적인 요새가 되고 있는 이곳 석병산(石屛山)에 웅거하였다. 훗날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고려왕이 마일성(馬一聲)장군을 시켜 체포케 하니, 마장군이 아우되는 이성, 삼성, 사성, 오성과 합세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석병산을 포위 공격할제, 주왕은 고려군에 쫓기다가 최후를 마쳤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주왕산은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대전사(大典寺)를 지나 주방천(周房川)을 끼고 사방으로 바위병풍을 쳐놓은 듯 웅장한 석벽과 수려한 경치로 둘러싸인 가운데, 장군봉 백련암(白蓮岩)을 넘겨보며 지부골 이라는 다리를 건너 계곡에 접어들면, 주왕이 고려의 장수 마사성(馬四聲)과 싸울때에 군졸도 적고 군량마저 모자라서 악전고투 할적에, 이 바위에다 군기를 꽂고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하여 고려군을 속이었다는 기암봉(旗岩峰)을 비롯해서, 이곳의 절경인 11경이 펼쳐져 탐승객들을 신비에 싸이게 하는데 자하성(紫霞城), 백련암(白蓮岩), 주왕굴(周王窟), 무장굴(武將窟), 급수대(汲水坮), 학소대(鶴巢台), 향로봉(香爐峯), 부암(浮岩), 연화굴(蓮花窟), 좌암(座岩)이 인접해 있고, 사찰로는 대전사(大典寺)와 거의 같은 연대에 창건된 주왕암(周王菴)이 있으며 주변의 비루봉(飛樓峰), 관음봉(觀音峰), 촉대봉(燭臺峰)등의 기봉은 경치를 더욱 빛내고 있다.
이곳에는 신라시대부터 최치원(崔致遠), 나옹화상(懶翁和尙), 도선국사(道詵國師), 보조국사(普照國師), 무학대사(無學大師), 서거정(徐居正), 김종직(金宗直), 김정국(金正國)등의 저명한 학자와 스님들이 수도하였다 하며, 임진왜란때에는 사명대사께서 승병을 훈련시킨 곳이라 하여 유명하며 명나라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사명대사를 격찬한 시문이 대전사에 게양되어 있다.
특히 우리의 시조 문림랑공과 또 윗대 조상이신 진사공 휘 현좌(賢佐) 진사공 휘 수정(守貞) 소윤공 휘 충(少尹公 諱 忠)께서도, 당시 신흥국가 원나라의 침략난리를 피하여 난공불락의 천연의 요충지 주왕산에서 은거하셨다는 전설이 있는바, 주왕산 학소대(鶴巢臺) 아래쪽 천변 암석에 주방동천(周房洞天) 문림천석(文林泉石)이란 글씨가 음각된 것이 있다.
이러한 전설이 인연이 되어 조선조 숙종말년에 우리 심문의 외손으로 청송도호부사에 부임한 성환(成煥)씨께서 중대산소가 우리 심문의 선대묘소임을 선비들로 부터 전해듣고, 이를 개축하고 사초한 후 호장(戶長)으로 하여금 사철절사를 받들게 하고, 대전사의 승려로 하여금 중대산 묘역과 주왕산을 수호케 하기 시작한 것이 연고가 되어, 이래 우리 심문의 권한에 예속되어 왔으나, 세부측량(稅簿測量) 당시 현지 청송종중에서 소출도 없는 임야의 세금부담 문제가 걱정이 되어, 세부등록을 포기하고 주방동천은 문림천석이라 각자하고 인해서 국유화 조치되어 버렸다. 다만 청송군 부동면 이전동(府東面梨田洞) 454-2호 임야 7町4反2묘보와, 부동면 상의동과 하의동 소재 토지 13필지 五,411평만을 종토로서 확보하여 보존하고 있다.
주왕산의 명물은 희귀한 산새들의 지저귐속에 약초인 산작약 복령(茯苓), 백출(白朮)등 한약재와 송이버섯 수단화(水丹花), 망가나무, 고양목등이 있으며 1940~1943年 사이에 개설된 주왕산의 도로는 안동(安東), 대구(大邱), 영천등지에서 직행버스가 주왕산 입구까지 왕래하고 있으며, 1979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부터는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