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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향토유적 제37호) |
沈喜壽敎旨 및 墓(심희수교지 및 묘)
鄕土遺蹟 第37號(안내판)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구원동 山 89 심희수(沈喜壽)는 조선조중기(朝鮮朝中期)의 문신(文臣)으로서 明宗3年(1548)에 出生하여 광해군(光海君)14年(1622)에 돌아갔다. 자(字)는 백구(伯懼) 호(號)는 일송(一松)이고 本貫은 靑松이다. 글씨에 뛰어났고 도승지(都承旨) 형조(刑曹)·이조판서(吏曹判書) 대사헌(大司憲) 우의정(右議政) 좌의정(左議政)등을 歷任하였다. 朝鮮朝 광해(光海)5年(一1613)에 만들어진 敎旨는 폭 38㎝ 길이 305㎝로 材料는 한지(韓紙)를 使用하였다. 이 敎旨에는 1等에 五名 2等에 14名 3等에 28名이 녹선(錄選)되어 있는데 沈喜壽는 李山海 李元翼등과 함께 2等에 속(屬)해 있다. 敎旨의 글은 목대흠(睦大欽)이 만들고 심인보(沈仁輔)가 썼다. 墓는 원흥동구성말마을에 배정경부인광주노씨(配貞敬夫人光州盧氏)의 墓와 쌍봉(雙封)을 이루어 위치하고 있다. 墓앞에는 숙종(肅宗)1年(1657) 3月에 세운 높이 132㎝ 폭 50,5㎝ 두께 17㎝ 규모(規模)와 화강석묘비(花崗石墓碑)가 있는데 앞면에는 의정부좌의정일송선생지묘정경부인광주노씨부좌(議政府左議政一松先生之墓貞敬夫人光州盧氏祔左)라 새겨져 있으며 床石 香爐石 望柱石과 文人石이 배치되어 있다. 石物以外에 봉분(封墳)의 左側에는 단(壇)이 하나 만들어져 있는데 1953年에 세워진 오석(烏石)의 碑앞에는 일타홍금산이씨지단(一桗紅錦山李氏之壇)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시가 새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