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서원 |
봉산서원(신축서원) |
鳳山書院配享一松沈公喜壽
欽相國嶽瀆攸孕得天粹畀圭潔無鶴立離萃行免擿埴依歸先修中立侍雪子容宜逑沿流泝源休媺克紹禮法根柢儒學模表泰階龍攄屯盈砥植鼎呂于時浸潤其澤寔維靡他亟丈之托彰烈崇報據典維宜漳祠爰闢式尊宗師適焉腏食盍薦于斯邦鄕合口情禮無違涓吉妥靈欽想瞻依 봉산서원에 일송을 봉안하는 글 아아 일송상공(一松相公)이시여 산천(山川)의 정기(精氣)받아 나셨도다. 천성(天性)이 순수(純粹)하고 구슬과 같이 깨끗하여 흠이 없었도다. 학(鶴)처럼 우뚝 서서 무리에서 뛰어났고 갈팡질팡하지 않았도다. 옛날 현인(賢人)을 의뢰(依賴)하여 배울적에 눈이 많이 내려 무릎까지 쌓이는 것도 모르고 스승을 기다렸도다. 자용(子容:노나라 때 공자의 제자 남궁괄(南宮适)의 자(字) 행실이 깨끗한 선비였음)과 짝할만하고 거슬러 올라가 근원을 추구(追究)하였도다. 아름다움을 능히 이어받았으니 예법(禮法)을 근본으로 삼았도다. 유학(儒學)에서 모범이 되고 높은 벼슬 두루 거치어 문형(文衡)을 맡았도다. 광해군의 혼란한 정치에 뜻이 맞지 아니하여 둔지산(屯之山)에 들어가 주역(周易)과 시(詩)로 깨끗하게 여생(餘生)을 보냈으니 당시의 큰 보배였도다. 윤택(潤澤)하게 젖어들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스승의 가르침 본받아 빛나고 열렬한 큰 보답 받았도다. 옛일의 근거에 마땅하니 이에 사당을 지었도다. 높은 스승 존경하여 마침내 서원에 배향(配享)하였으니 어찌 여기에서 제사지내지 아니하리오 나라와 향리(鄕里)의 여론이 똑 같도다. 정례(情禮)에 어긋남이 없어 좋은 날 택(擇)하여 신주(神主)를 섬겨 모시니 공경하고 앙모(仰慕)하여 의지하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