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군수공(휘 간)묘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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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공 휘 간 묘소 묘 비 석 |
출처(出處)를 때에 맞게 하고 직사(職事)에 충성(忠誠)을 다하여 노췌(勞悴)해서 순직(殉職)하되 후회(後悔)가 없으신 분은 군수(郡守)로 영의정(領議政)에 증직(贈職)된 沈公 諱 諫 字 백기(伯幾)이시다. 청송심씨(靑松沈氏)가 고려문림랑위위사승(高麗文林郞衛尉寺丞) 諱 홍부(洪孚)로부터 시작(始作)하여 세상(世上)의 갑족(甲族)이 되었다. 諱 덕부(德符)는 태조(太祖)를 도와 좌정승청성백(左政丞靑城伯)에 시정안(諡定安)이요 낳은 諱 溫은 세종국구(世宗國舅)로 영의정청천부원군(領議政靑川府院君)에 安孝요 낳은 준(濬)은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증직(贈職)되고 낳은 諱 치(淄)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이요 낳은 諱 형(泂)은 금천현감(衿川縣監)으로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증직(贈職)되니 공의 고조(高祖)이다. 曾祖는 諱 달원(達源)이니 좌통예(左通禮)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贈職)되고 祖는 諱 자(鎡)니 첨정(僉正)으로 좌찬성(左贊成)에 증직(贈職)되고 考는 諱 우직(友直)이니 은산현감(殷山縣監)이요 비는 초계정씨(草溪鄭氏)니 교관인수여(敎官仁壽女)로 1560年庚申에 公을 서울집에서 낳다. 장모(狀貌)가 준수(俊秀)하고 영특(英特)하여 재조(才操)가 있으니 찬성공(贊成公)이 기애(奇愛)하여 가르치기를 반드시 법도(法度)로 하니 公이 가슴에 새겨 봉친(奉親)하는 여가(餘暇)에 경학(經學)을 부지런히 하여 약관시(弱冠時)에 문망(文望)이 높았다. 1585年乙酉에 사마(司馬)에 합격(合格)하여 문음(門蔭)으로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이 되고 봉사(奉事)와 직장(直長)을 거쳐 사복사주부(司僕寺主簿)가 되다. 1591年辛卯에 金化縣監에 除拜되고 1594年甲午에 부친상(父親喪)을 當하여 지제(持制)를 돈독(敦篤)히 하여 슬픔과 禮를 갖추다. 1596年丙申에 석성현감(石城縣監)이 되고 1601年辛丑에 남평현영(南平縣令)에 승배(昇拜)되니 임진왜란(壬辰倭亂)을 겪은後라 기강(紀綱)이 해이(解弛)하고 폐정(弊政)이 쌓인故로 무휼(撫恤)에 진심(盡心)하여 백성(百姓)으로 하여금 안도(安堵)케하다. 1605年乙巳에 모친상(母親喪)을 當했고 服이 끝나자 금포현령(金浦縣令)에 제수(除授)되다. 광해정란(光海政亂)을 만나 당세(當世)에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에 돌아와 구업(舊業)을 온역(溫繹)하고 후학(後學)을 장진(奬進)하며 시주(詩酒)로서 즐기다. 인조반정(仁祖反政)이 되자 아들 기원(器遠)의 정사일등훈(靖社一等勳)으로 特히 청풍군수(淸風郡守)에 서용(叙用)되니 쇠력(衰力)을 부고(不顧)하고 정사(政事)를 다하다가 翌年甲子7月24日에 任所에서 졸하니 壽가 65라 仁祖가 애도(哀悼)하시어 유관치제(遺官致祭)하고 特히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겸영경연홍문관(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 예문관(藝文館) 춘추관사세자사(春秋館事世子師)를 증직(贈職)하고 경기과천군상서면외비산(京畿果川郡上西面外飛山) 현안양시비산동임곡임자원(現安養市飛山洞林谷壬子原)에 예장(禮葬)하다. 配位는 증정경부인평양조씨(贈貞敬夫人平壤趙氏)니 장사랑응양(將仕郞應亮)의 女라 공몰육년후(公沒六年後) 1628年戊辰6月14日에 卒하니 公墓下에 合兆하다. 4男에 기원(器遠)은 좌상(左相)이고 기중(器重)은 김화현감(金化縣監)으로 좌승지(左承旨)에 증직(贈職)됐고 기주(器周)는 수원부사(水原府使)로 기성(器成)은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양주목사(楊州牧使)요 2女는 한양조한현감(漢陽趙翰縣監)과 기계유빈(杞溪兪彬)에 출가(出嫁)하다. 장방손(長房孫)에 석경(碩慶)은 進士요 二房孫에 석반석명석보석노석현(碩槃碩明碩輔碩老碩賢)이요 삼방손(三房孫)에 만흥수흥(晩興秀興)이요 계방손(季房孫)에 수정수구수규수태(壽鼎壽耉壽奎壽泰)요 孫女以下는 부록(不錄)한다. 대개공(大槪公)이 世家의 적손(嫡孫)으로 재학(才學)이 있고 벼슬길에 올라 내외직(內外職)을 역임(歷任)하다. 法度를 지켜 군덕(君德)을 펴고 민은(民隱)을 구휼(救恤)하여 반드시 가기(可紀)의 事蹟이 많으련만 갑신가화(甲申家禍)에는 失되어 傳하지 못하다. 12代孫壽燮이 이를 통탄(痛嘆)하여 그 족숙상득씨(族叔相得氏)로 관계이력(官階履歷)을 국조실록(國朝實錄)에서 수출(搜出)하여 나에 墓表의 글을 부탁(付託)하니 나 이미 公의 출처(出處)가 바르고 직사(職事)에 충성(忠誠)함을 감복(感服)하고 또 수섭술선(壽燮述先)의 孝道을 높여 사양(辭讓)치 아니하고 그의 개요(槪要)만을 약술(略述)하여 後來에 公의 德을 상고(詳考)하는 선비 읽도록 하노라.
檀紀4321(1988)年 8月 15日立 光復後戊辰暮春下瀚 前成均館 典學 居昌 愼思範 撰 慶州 金東一 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