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망우당 |
書(沈淸) 與郭忘憂(再祐○丁酉)
淸再拜頓首言不意凶變令先妣許夫人喪事出於千萬夢寐之外承訃驚警夫復何言時又異昔初終之禮且何以經紀悲戀之懷有不能以言盡竊惟大孝之心恐至傷孝而方此國家危亂不可輕重於忠孝矣自倭酋渡海之後鄕邑烟塵生民塗炭而社稷存亡之憂己垂五六年今猶未淨而大嶺以南又爲甚焉者乃倭賊出入之路也幕府首倡義擧南土之士歙然從之而幕府奮忠賈勇賊兵之糜粉鼠竄者不一二由是士氣始壯矣淸不自量力倡率鄕人以赴國亂狼狽未暇而幸與幕府相會謂可以得蒙指揮而晉陽且長城之依矣不幸前者金諭使病卒軍中幕府又遭內艱諸軍失望多士寒心奈何奈何昨暮達城侯將來到言賊勢浩大未知何如措撥而秖當也若此賊未勦則淸有死而後己此時秋高伏祝强加餰粥爲國支保南望奉疏白日生寒 편지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에게 정유년에 청은 두 번 절하고 머리숙여 말씀드립니다. 뜻밖에 흉변(凶變)인 자당(慈堂) 허부인(許夫人)의 상사(喪事)는 천만몽매간(千萬夢寐間)에서 나온 것으로 부음(訃音)을 받고 깜짝 놀랄뿐 다시 무슨 말을 하오리까 또 때가 옛날과 다르니 초종장례(初終葬禮)를 무엇으로써 경륜(經綸)하여 처리하시겠습니까 슬피 사모하는 마음을 능히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지극한 효심(孝心)으로 효도를 상하게 될까 두려웁고 바야흐로 이 국가가 위란(危亂)할 때 충(忠)과 효(孝)에 경중(輕重)을 따질 수가 없으시겠지요 왜적(倭賊)이 바다를 건너온 뒤로부터 향리에 전운(戰雲)이 감돌아 백성은 도탄(塗炭)에 빠지고 나라가 존속(存續)되느냐 망하느냐를 근심한지 56년이 되었으나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고 영남지방이 더욱 심한 것은 왜적의 출입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막부(幕府)에서 앞장서 의거(義擧)할 것을 주창(主唱)하자 남쪽 땅의 선비들이 의견이 일치되어 좇았고 막부에서 충성과 용맹을 떨치니 적병이 무너져 살금살금 도망쳐 숨는 자가 하나 둘이 아니니 이로 말미암아 사기(士氣)가 처음으로 씩씩하여 졌습니다. 청(淸)은 스스로 힘을 헤아리지 못하고 향인(鄕人)들에 앞장서서 부르짖고 국난(國亂)에 나가 낭패할 겨를 없이 다행히 막부에서 서로 만나 지휘(指揮)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진양(晉陽)과 장성(長城)을 도와주려 하였더니 불행히도 지난번에 김성일(金誠一) 초유사(招諭使)가 군중(軍中)에서 병사(病死)하고 또 막부에서 장군이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제군(諸軍)이 실망(失望)하고 두려워 하니 어찌하면 하겠습니까. 작년 연말에 달성후장(達城侯將)이 와서 말하기를 적세(賊勢)가 아주 넓고 커서 어떻게 조치하여 막아야할지 모르겠다 하였으니 만약 이적을 소탕하지 못하면 청은 죽고야 말 것입니다. 지금 연세도 높으니 삼가 빌건대 죽이라도 자시고 나라를 위하여 몸을 보존하옵소서 남쪽에 글을 바치니 대낮인데도 한기(寒氣)가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