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호군공(휘 필윤)유사

 

부호군공 휘 필윤 묘소
소재지: 청송군 청송면 초막동


於休我沈之氏於靑松自麗世而名公巨卿文行忠節接武前後入我 朝尤盛焉其家先世德載在先稿府君諱弼倫字悅之號秋塘成化甲午生幼而聰穎甫學受讀家庭耳濡目染記性邁倫參奉公奇愛之期待甚至丙午參奉公卒府君年甫十三初終殮殯之節朝夕哭奠之儀如成人焉上慰老母外酬賓客極盡誠敬時弟姪俱幼無可以幹當家政府君一遵乎家先故事嘗以箕裘之及巳墜墮爲憂懍懼勉勵潛居先齋日親經史未嘗少懈書藏書箴于所居之壁每於秋夜月色當軒之時因彷徨于軒之西北隅小塘之邊惕然誦先公詩歸來月上軒此心長照白之句以寓風樹之感焉丁亥丁母夫人憂巳非散垂之年而哀疚成毁葬地稍間未嘗以暑雨風雪或廢往省 中廟三十六年辛丑除副護軍是年九月二十八日終享年八十八葬于府內考亭洞酉坐原配淑夫人一直孫氏處士漢相女墓祔嗚呼府君早違過庭之訓亦少師友之益而能卓然自修從事於聖賢書鞱晦潛養便成一家規矱而至若立家政處事務亦有綜理不使到後追悔雖細節毫務無不謹愼而養生送死之節尤爲極力無憾人有所不可及者當日修己持心之要有可以表著者多而逮府君之孫碧節公仗義之日世事搶攘家屢經燹未得救免只詞與箴數篇幸傳於斷爛故紙中此烏可爲九苞之一羽也庶後之讀是卷者尙有以知其敦倫博古沉養力行之實於百世之下否乎

後孫 穆 謹書


9세조 부호군공 휘 필윤(弼倫) 유사
아아 아름답도다. 우리 청송심씨는 고려 시대로부터 이름난 재상(宰相)과 높은 벼슬과 문학과 덕행과 충성스러운 절개가 앞 뒤로 나왔고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더욱 성하였고 그 가문의 여러 대를 거쳐 쌓아 내려오는 아름다운 덕화(德化)는 옛날의 문서에 실려 있다. 부군(府君)의 휘는 필륜(弼倫)이요 자는 열지(悅之)이며 호는 추당(秋塘)이니 성화(成化) 갑술년에 낳아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리하여 겨우 가정에서 글을 배울 적에 귀와 눈으로 듣고 봄으로서 단련해서 저절로 능력이 생기고 기억하는 것이 출중하고 뛰어나니 參奉公이 기특하게 여겨 사랑하고 기대함이 컸다. 병술년에 참봉공이 돌아가시자 부군이 겨우 열세살에 초상에 관한 일체의 절차와 조석으로 곡하며 올리는 상식의 예의를 어른과 같이 하였고 위로 늙은 어머니를 위로하며 밖으로 손님을 대접하는데 정성과 공경을 극진히 하였다. 이 때 아우와 조카가 모두 어려 집안 일을 감당할 수 없었으니 부군이 한결같이 집안의 옛일을 준수(遵守)하고 일찍이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업(遺業)이 자기의 대에 이르러 떨어뜨릴까 근심하여 두렵고 두려워하며 힘쓰고 조상의 재실(齋室)에서 잠겨 살며 날마다 친히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읽는 것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경계가 되는 글을 거처하는 방벽에 써 부쳤고 가을밤 달이 집에 비칠 때마다 집의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작은 연못의 가에서 거닐며 아버지의 시(詩) 귀래월상헌(歸來月上軒:달이 집에 떠오르니) 차심장조백(此心長照白:이 마음이 길이 밝겠네)라는 글귀를 슬프게 읊으며 부모를 일찍 여의고 봉양할 수 없는 느낌을 부쳤다. 丁亥年에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어른의 나이가 아니면서도 슬퍼하여 몸져 누울 지경이었고 묘소가 좀 멀었으나 일찍이 덥고 비오고 바람 불며 눈이 온다고 성묘하는 일을 그만 두지 않았다. 중종 36年 신축에 부호군에 임명되었고 이해 9월 28日에 돌아가시니 향년이 88이요 부내(府內) 고정동(考亭洞) 유좌원에 장사지냈다. 배위는 숙부인 일직손씨(一直孫氏)로 처사 한상(漢相)의 따님이니 묘는 합부(合祔)하였다. 아아 부군은 일찍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또한 스승과 벗의 도움이 적었으나 능히 뛰어나게 스스로 몸을 닦고 성현(聖賢)의 글에 종사(從事)하며 재지(才智) 학문등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며 마음을 가라앉혀 양성하고 一家의 법규를 만들어 집안 살림을 다스리고 일을 처리한 것에 이르러서는 또한 종합하여 다스림이 있고 빈틈없이 찬찬하여 후회하는 일이 없으며 비록 작은 일에도 삼가하지 않음이 없어 부모가 살았을 적에 봉양하는 것과 돌아가셔 보내는 절차에 더욱 힘을 다하고 사람들이 따를 수가 없었으니 당일 몸을 닦고 마음을 가진 중요한 줄거리에 나타낼 수 있는 것이 많았겠지만 부군의 손자 벽절공(碧節公)이 정의(正義)로써 일을 행하던 날 세상일이 몹시 어지럽고 집이 여러 번 병화(兵火)를 겪어 구제 받고 면함을 얻지 못하여 다만 사(詞)와 잠(箴) 두어 편이 다행히 여러 조각으로 찢어진 옛 종이 속에서 전해졌으니 이것이 어찌 아홉 꾸러미에서 한 깃이 됨이 아니리오 뒤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그 인륜(人倫)을 도탑게 하고 고사(古事)에 널리 통하며 마음을 가라 앉혀 기르고 힘써 행한 사실을 백세의 뒤에 알 수 있을 것인가.

후손 목(穆)이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