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리 점산기문 |
甲子禍變時忠惠公年十四定山地於江華翌年二月發引至通津甕井里靑霞山下喪轝長杠忽斷折事甚罔措方伐木伐斲有少沙彌過之問曰誰家行喪往何地遭此狼狽吾看喪主是我年紀可衰也有老奴曰將往江華而營窆沙彌曰吾聞江華無善地此山之內有大地何爲近捨大地遠尋無山之江華乎公聞之門沙彌曰吾師精通地理項日往江華路過此地曰此山有大地及其入江華遍觀山水而曰此中無佳地公曰汝師何在沙彌曰與我偕來見人多避而從田塍而去擧手遙指曰被去之僧吾師也公望見頎然一僧軒步而去卽疾走追及於數里之地攬僧之裾氣塞而仆其僧大驚按摩公良久始起而請曰吾以禍家餘生行喪而來又此遭變聞禪師湥通地理此處有吉地云幸爲我指示其僧稱以不知地術牽拒之公曰沙彌之言豈爲誣也且佛敎以慈悲爲主禪師見此而無慈悲之心乎懇要不己其僧幡然改心合掌而言曰此天也吾何以秘之遂與公偕來以倒杖法點穴曰此爲正穴以彼爲案坐艮而明日午時安葬穴深幾而止則有靑石下有生物勿開見若必開見小僧今往某地一宿明日午前渡巨野津往九月山量小僧渡津而開見又曰葬此百子千孫世出卿相當爲東國巨族因告去穿壙則果有靑石會葬諸人曰僧言驗矣不當開見有尊屬之隨喪來者一人力言其開見遂及午時擖石則下有雙蜂如拳大急閉石時一蜂飛出續役處三匝直向巨野津而飛去人皆異之安葬後卽使人往看之其僧死在津邊沙彌枕股而哭問其故荅曰吾師忽生足病不便生步纔到津邊見大蜂飛來忽避藁積之中其蜂從後螫腦而死云其後忠惠公四兄弟俱登文科三世而出 王妃後孫繁衍
옹정리 점산기문(甕井里 占山記聞) 갑자사화 때 충혜공의 나이 14세에 묘소 자리를 강화에 정하고 이듬해 2월에 발인하여 통진 옹정리 청하산(靑霞山) 아래에 이르자 상여의 긴 다리가 갑자기 끊어져 어찌할 수 없어서 나무를 베어 고치려고 하는데 어린 중이 지나가다가 묻기를 누구의 집 행상(行喪)이며 어디로 가는데 이렇게 낭패를 당하고 있습니까 내가 상주를 보건대 나와 연기가 같을 것 같습니다 하자 늙은 종이 강화로 가서 장사를 지낼 것이라 하니 어린 중이 내가 듣건대 강화에는 좋은 곳이 없고 이 산 안에 대지(大地)가 있는데 어찌 가까이에서 대지를 버리고 멀리 좋은 곳도 없는 강화를 찾아가려고 하느냐 하고 물으니 公이 듣고 물어보자 어린 중이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지리에 정통한데 저번에 강화로 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면서 말하기를 이 산에 대지가 있다고 하더니 강화에 들어가 두루 산수를 돌아보고 이 가운데는 좋은 곳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公이 너의 스승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자 어린 중이 말하기를 나와 같이 왔는데 사람을 보면 피하는 일이 많아 밭두둑을 따라 갔다하고 손을 들어 먼 곳을 가리키며 저기 가는 분이 나의 스승이라 하므로 公이 바라보니 키가 큰 한 중이 유유히 걸어가는지라 즉시 수리(數里) 길을 달려가서 중의 옷을 잡고 기가 막혀 쓰러지니 그 중이 크게 놀라 어루 만져주자 公이 조금 있다가 일어나서 청하여 말하기를 나는 화를 당한 집안의 여생(餘生)으로써 장사를 치르려고 와서 이런 변을 만났습니다. 선사(禪師)께서 지리에 정통하다니 이 곳에 좋은 곳이 있으면 다행히 나를 위하여 지시하여 주오 하니 그 중이 지술을 모른다고 하며 완강히 거절하자 公이 말하기를 어린 중에 말이 어찌 거짓이었겠소 불교는 자비한 것으로써 주(主)를 삼는 것인데 선사가 이런 일을 보고서도 자비한 마음이 없소 하고 간절히 요청하기를 마지 않으니 그 중이 갑자기 마음을 고쳐 합장하고 말하기를 이는 하늘이 시킨 것이니 내가 어찌 숨기리오 하고 드디어 公과 같이 와서 혈(穴)을 점쳐 말하기를 여기에서 정혈(正穴)은 저 앞산 간좌이니 내일 오시(午時)에 안장(安葬)하시오 혈이 얼마 안 가서 그치면 푸른 돌 아래에 생물(生物)이 있을 것이니 열어보지 마시오 만약 반드시 열어보려면 소승이 지금 어느 곳으로 가서 하루 밤 자고 내일 오전에 거야진(巨野津)을 건너 구월산으로 갈 것이니 소승이 나루를 건너는 것을 헤아리고 열어보시오 하고 또 말하기를 여기에 장사지내면 많은 자손이 나와 경상(卿相)이 되고 마땅히 우리나라의 큰 족벌이 될 것이라고 고하고 갔다. 무덤을 파봄에 과연 푸른 돌이 있으니 회장(會葬) 온 여러 사람들이 중의 말이 맞았도다 열어 보는 것은 마땅치 않다 하였다. 존속(尊屬)으로서 장사지내는데 따라온 한사람이 극력 주장하여 열어보자고 하자 오시가 되어 열어보니 주먹만한 벌 두 마리가 있어 급히 돌을 닫았는데 그때 벌 한 마리가 날라서 나와 일하는 곳을 세 번 돌고 바로 거야진을 향하여 날아가니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여겼다. 안장한 뒤에 곧 사람을 시켜 가서 보게 하니 그 중은 나루 가에서 죽어 있고 어린 중이 다리를 베고 울고 있었다. 그 연고를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기를 우리 스승이 갑자기 발에 병이나 불편하게 겨우 나루 가에 이르자 큰 벌이 날라 와서 급히 짚을 쌓아둔 속에 피하니 그 벌이 뒤따라 날아와서 머리를 쏘아 죽었다고 말하였다. 그 뒤에 충혜공의 네 형제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고 三대에 왕비가 나왔고 후손이 번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