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부원군 휘 룡(靑華府院君 諱 龍)

                                  

行       蹟

고려조(高麗朝)의 전리정랑(典理正郞)이었고 문하시중청화부원군(門下侍中靑華府院君)에 추봉(追封)되었으니 아들 정안공(定安公)이 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墓는 안성군(安城郡) 북오리(北五里) 실왕리(實旺里)였는데 난리(亂離)를 겪고 나서 실전(失傳) 되었더니, 1608년 宣祖 41年에 九代孫 열(悅)이 경기감사(京畿監司)로 있을 때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