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보(第1回) 번역문 |
族之有譜古也周之宗法漢之世表是已惟我靑松沈氏實三韓大姓也自 文林郞至于 靑城伯以下仍休儕美其流風遺澤奕世彌昌公侯接踵貂蟬聯芳如木之根厚而枝茂如水之源深而流長豈特王謝之於晉崔盧之於唐而止哉况如五出 國母爲世妊姒載誕 聖明繼繼承承金枝毓慶玉葉敷祥不啻若瓜 之綿綿則此固曠古之所未嘗聞也竊思夫有父子有兄弟爲叔姪爲堂從始親而終踈自近而漸遠同異姓於是乎分焉此雖理勢之使然而其於隆殺之間不能無憾焉者也如欲其指點分明攷余派於一瞭之中則莫若圖譜之爲切也今方伯沈公光彦氏巡臨弊府招通源若曰吾門闌世閥不爲不盛而其於撰述家業盖闕如也吾先君有志未就而手草遺存思欲繼述焉慨念于懷久矣幸今吾與子適會此道僚佐柳君泗亦爲沈氏之表孫天其或者盖亦有待於今日乎子其勉之遂以草譜與之於是詳究本支補闕證訛同姓則雖孽而不遺異姓則計世代而略節似無餘蘊而然於 祖先之生某甲娶某氏歷仕高下享壽長短慮或泯沒而難尋故幷附行狀碑銘於譜後以寓夫羹墻之思焉遂鳩工繡梓期永其傳嗚呼同是譜者咸知一本之萬殊千梢之一脉推源反本以擴親親之道則疇敢以服窮情盡而忽視如塗人也哉庶見人篤孝順之心士尙敦睦之行自身而家自家而國周禮大司徒賓興六行之敎將復行於當世矣是亦裨補風化之一資云爾嘉靖乙巳季夏初吉後裔通訓大夫行順天都護府使順天鎭兵馬僉節制使兼監牧通源書于昇平館
(번역문) 씨족의 족보가 있은지는 오랜 옛부터이니 주나라의 종법(宗法)과 한(漢)나라의 세표(世表)가 이것이다. 생각하건대 우리 청송심씨는 진실로 우리나라의 삼한대성(三韓大姓)이다. 문림랑(文林郞)으로부터 청성백(靑城伯)과 그 이하에 이르도록 자손의 재능이 뛰어나고 행의(行誼)가 아름다워 그 조상이 남기신 빛나는 풍도와 은택(恩澤)이 대대로 더욱 창성하여 공경(公卿)이 끊이지 않고 계속하여 배출하고 높은 벼슬(貂蟬:초선)①의 아름다운 명성이 길게 이어짐은 나무의 뿌리가 튼튼하고 두터우면 가지가 무성한 것과 같고 물의 근원이 깊고 멀으면 마르지 않고 언제나 흐르는 것과 같으니 어찌 특별히 진(晉)나라의 왕씨와 사씨(王謝)② 당(唐)나라의 최씨와 노씨(崔盧)③에게 그치겠는가. 더구나 소헌성모(昭憲聖母)가 나시어 세상의 왕후(妊姒:태임과 태사)④가 되시고 바로 성군을 탄생하시어 대대로 이어 받으시고 왕실의 경사로운 복을 받고 왕손의 상서(祥瑞)⑤를 널리 펴시었고 뿐만이 아니라 후손(瓜瓞:과질)⑥이 오래 계속되어 끊이지 않음과 같은 것은 진실로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 가만히 생각하건대 부자(父子)가 있으면 형제가 있어 아저씨와 조카가 되고 당숙과 종질(從姪)이 되어 처음에는 친근하였다가 종국에는 소원하여지며 가까움으로부터 점점 멀어지어 타성과 같이 되고 이에 나누어지니 이는 비록 사리와 형세가 그렇게 되었더라도 그 융성하고 쇠퇴되는 사이에 유감이 없을 수 없다. 그 하고자하는 점을 분명히 가리키고 내 파(派)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하려고 할 것 같으면 족보를 하고자 하는 것보다 간절함이 없다. 이제 감사 심공 광언(光彦)씨께서 도내를 순시하시다가 순천부에 찾아오시어 통원(通源)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우리 집안 문벌이 성(盛)하지 않음이 아니어늘 그 집안에 전하여 오는 가업(家業)을 저술한 것이 없어서 나의 선친께서 여기에 뜻을 두시었다가 이루지 못하시고 손수 초안하신 원고만이 남아 있어 선친의 뜻을 계승하여 저술하려고 생각하며 마음속에 품고 개탄한지가 오래 되었다. 다행하게도 이제 나와 부사가 마침 이 전라도에서 만났으며 보좌관 유군 사(柳君 泗)도 또한 심씨의 외손이니 하늘의 뜻인가. 또한 우리에게 오늘을 있게 하였음이니 부사는 힘쓸지어다』 하시고는 마침내 초안한 보첩(譜牒)을 주었다. 이에 본파와 지파를 자세히 연구하고 빠진 것은 보충하고 잘못된 것은 고증하여 동성(同姓)이면 비록 서자라도 빠뜨리지 않고 외손은 세대를 계산하여 간략하게 조절하니 남아있는 흠절이 없는 듯 하나 그러나 선조의 생졸(生卒)과 배위(配位)와 벼슬이 없어져서 혹 찾기 어려움을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행장(行狀)과 비명(碑銘)을 족보의 후면에 모두 붙이어 선조의 덕행을 사모하는 생각을 가지고 마침내 재(梓)나무판에 새겨서 영구히 그를 전하기로 하였다. 아! 이 족보를 같이한 사람은 모두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갈라지고 천 가지의 끝이 한 줄기이니 근본을 알아서 친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누가 감히 먼 일가라고 하여 길가는 사람과 같이 가볍게 보겠는가.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돈독히 하고 선비는 서로 숭상하고 돈목하며 자신으로부터 가정을, 가정으로부터 나라를 다스리어 주례(周禮)⑦의 대사도(大司徒)⑧의 외교와 빈흥(賓興)⑨과 육행(六行)⑩의 가르침이 장차 다시 이 세상에 행하여질 것이니 또한 풍교(風敎)⑪를 돕는데 일조가 되리로다. 가정을사(인종원년 1545) 6월1일에 후손 통훈대부행순천도호부사 순천진병마첨절제사겸 감목 통원(通源)은 승평관에서 씀 註① 초선(貂蟬):여러 가지 높은 벼슬들 ② 왕사(王謝):진(晉)나라의 왕도(王導)와 사안(謝安)은 모두 명가(名家)이다. ③ 최노(崔盧):북주(北周)의 최유(崔猷)와 노변(盧辯) 모두 명인(名人)이다. ④ 임사(妊姒):주(周)나라 文王의 어머니와, 文王의 王后 ⑤ 상서(祥瑞):복스럽고 길한 징조 ⑥ 과질(瓜瓞):넝쿨이 길게 뻗음, 즉 후손이 번성함. ⑦ 주례(周禮):주나라의 예법 ⑧ 대사도(大司徒):문교부장관 같은 교육책임자(충효를 다스리는 곳) ⑨ 빈흥(賓興):주대(周代)에 선비를 채용하는 법. 향음주(鄕飮酒)의 예로써 빈객(賓客)을 삼아 추천하는 일. ⑩ 육행(六行):여섯 가지의 선행(孝 友 睦 任 恤) ⑪ 풍교(風敎):풍습을 교화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