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군(선산)

〈관수(官帥)〉
심 회(沈 澮):영의정 온(領議政 溫)의 아들이요 청성백 덕부(靑城伯 德符)의 손자(孫子)이다. 세종조초(世宗朝初에 태종(太宗)이 상왕(上王)이 되어 온(溫)이 王后의 아버지로 代를 이어 정승(政丞)이 되므로 위엄(威嚴)과 권세(權勢)가 크게 성(盛)함을 미워하여 사건(事件)을 일으켜 수원에서 사사(賜死)하니 이에 가문(家門)의 화(禍)가 크게 일어났다. 회(澮)는 나이가 아직 어리어 비자(婢子)에게 업혀 도망가서 강정 강거민(綱正 康居敏)의 집에 맡겨지니 거민(居敏)은 부자이지만 아들이 없어 회(澮)를 길러 아들 삼고 가업(家業)을 모두 부탁하였다. 거민(居敏)이 죽음에 공(公)이 그 상복(喪服)을 입었고 그 처상(妻喪)에도 정승(政丞)으로써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와 심상(心喪)으로 삼년(3年)을 시묘(侍墓)살이 하였다. 온(溫)이 사사(賜死)됨에 소헌왕후(昭憲王后)가 궁궐(宮闕)의 마당에서 대죄(待罪)하니 세종(世宗)이 그만 두게 할 것을 계청(啓請)하였으나 上王이 왕비(王妃)는 자손(子孫)이 많은 경사(慶事)가 있다고 하여 윤허(允許)하지 않았다. 태종(太宗)이 온(溫)의 罪는 선조(先朝)를 범(犯)하였다 하여 끝내 자손(子孫)을 용서하지 않았더니 문종조(文宗朝)에 이르러 비로소 용서를 받아 조정(朝廷)으로 돌아와 벼슬이 영의정(領議政)에 이르고 그 자손(子孫)에 현관(顯官)이 많았으며 강거민(康居敏)의 묘(墓)를 생묘(省墓)하는 일을 폐(廢)하지 아니하였다.
〈인물(人物)〉
심의동(沈宜東):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능원(沈能源):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의유(沈宜游):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성택(沈聲澤):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여 벼슬은 도사(都事)였다.
심상정(沈相鼎):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상익(沈相翼):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여 벼슬이 참봉(參奉)이였다.
심상덕(沈相悳):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기섭(沈起燮):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여 벼슬은 종묘령(宗廟令)이였다.
심영택(沈永澤):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 주(沈 澍):절도사(節度使)였다.
심능섭(沈能燮):벼슬은 승지(承旨)였다.
심능식(沈能栻):벼슬은 참의(參議)였다.
심의문(沈宜聞):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여 벼슬은 교리(校理)였다.
심 현(沈 鉉):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 건(沈 鍵):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원지(沈元之):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여 벼슬은 현감(縣監)이었다.
심 도(沈 鍍):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능석(沈能碩):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능태(沈能泰):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능익(沈能翊):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능격(沈能格):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여 벼슬은 현감(縣監)이었다.
심의순(沈宜淳):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상만(沈相萬):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참판(參判)이었다.
 음사(蔭仕)〉
심약황(沈若潢):현령(縣令)이었다.
심 박(沈 縛):현감(縣監)이었다.
심정섭(沈廷燮):의관(議官)이었다.
〈환적(宦蹟)〉
심 론(沈 惀):음직(蔭職)으로 가선(嘉善)이었고 癸亥에 래임(來任)하여 천계갑자(天啓甲子)에 사창(司倉)을 짓고 또 해평창(海平倉)을 지었고 丁卯에 사임(辭任)하였다.
심지한(沈之漢):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였고 癸未에 래임(來任)하여 丙戌에 사임(辭任)하였고 아사(衙舍)를 지었다.
심 옥(沈 鈺):음직(蔭職)으로 壬申에 홍주현감(洪州縣監)으로써 이배(移拜)하여 乙亥에 사임(辭任)하였다.
〈문묘직원(文廟直員)〉
심광택(沈光澤) 심창섭(沈昌燮) 심동환(沈東煥)
심상진(沈相鎭):주사(主事)
심건섭(沈健燮):주사(主事)
심 총(沈 樬):청양군 의겸(靑陽君 義謙)의 증손(曾孫)이니 우관(郵官)으로써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當)함에 의병(義兵)을 일으켜 군사(軍士)를 거느리고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가서 오랑캐와 싸워 오랑캐 수천명을 죽이고 랍서(蠟書)(밀을 동그랗게 뭉쳐 그 속에 비밀 문서를 넣은 것)를 가지고 달려가서 보고하였으나 외부(外部)에 소식(消息)이 알려져 화의(和議)가 마침내 이루어지자 통곡(痛哭)하고 군사(軍士)를 이끌고 돌아오니 인조(仁祖)가 가상히 여겨 크게 쓰고자 하였으나 공(功)을 사양하여 받지 않고 돌아와서 비장(裨將)이 된 뒤에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벼슬이 부윤(府尹)에 이르렀다.
심주(沈澍):총(摠)의 손자(孫子)이니 代代로 유업(儒業)을 전(傳)하였으나 특별(特別)히 당시(當時) 재상(宰相)이 경연(經筵)에서 아뢰는바 되어 바로 사복내승(司僕內乘)에 임명(任命)된 後 무과(武科)에 급제(及第)하여 절도사(節度使)가 되었다.
〈부임청백저명(赴任淸白著名)〉
심우택(沈雨澤):사양하고 떠남.
심의두(沈宜斗):이배(移拜)됨.
심택진(沈宅鎭):이배(移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