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부읍지

沈德符(덕부):섬의 풍속이 아주 궁벽한 두멧구석이어서 일찍이 학문을 연구할 줄 몰랐더니 덕부가 크게 서당을 열고 스승을 맞아들이며 고을의 子弟를 모아 시(詩) 서(書) 예의(禮義)를 가르쳐 울연(蔚然)히 한나라의 문옹(文翁)이 촉(蜀)나라를 교화(敎化)시킨 풍도(風度)가 있었다. 史記에 덕부(德符)가 부윤(府尹)이 되었다고 일컬렀은 즉 고려시대에 이미 이 벼슬이름이 있었으나 지금 상고 할 수 없다.
심 열(沈 悅):유수(留守)로 처음 벼슬이름이 승격되어 법을 환히 아는 사람으로서 처음 정사할 사람을 선택하는 大臣들이 모두 말하기를 심열(沈悅)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여 드디어 임명하니 심열(沈悅)이 정사를 함에 청렴하고 간결하여 구차하지 않았고 일이 없으면 항상 문을 닫고 책을 읽었다고 하였다.
심 현(沈 誢):城이 함락되자 그 조카 동구(東龜)가 배를 준비하고 울면서 나가 피하라고 청(請)하니 심현이 말하기를 나라가 망하고 집이 망하였으니 살아서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죽기로 결심하였으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 하였다. 부인 宋氏가 곁에 있으면서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하기를 충성에 죽고 정조에 죽는 것이 다만 능히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나도 또한 청컨대 종용당(從容堂)의 고사(故事)를 본받겠다 하자 심현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그대의 능함을 알겠다하고 이에 조복(朝服)을 갖추어 입고 행궁(行宮)이 있는 조정을 향하여 네 번 절하고 종이와 붓을 찾아 유소(遺疏)를 써 말하기를 臣 심현은 동향(東向)하여 네 번 절하고 남한산성의 主上殿下에게 글을 올리옵나이다. 臣과 妻 宋은 한날 지결(自決)하여 국은(國恩)에 보답(報答)한다 하고 글을 다 써 외손(外孫) 朴長遠에게 주고 드디어 서로 마주보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 충렬사(忠烈祠)에 배향(配享)하였다.
심지심(沈之諶):사인(士人)으로 城이 함락되자 그 어머니가 적에게 죽은바 됨에 심지심(沈之諶)이 救하지 못하고 어머니 시체를 감싸고 함께 죽으니 그 부인과 아들도 또한 죽었다.
심 숙(沈 諔):충렬공(忠烈公) 심현의 종부제(從父弟)로서 의병장(義兵將)이 되었더니 도적이 이르자 江上으로 달려나왔다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아마도 또한 전몰(戰歿)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