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부

〈총화(叢話)〉
사인(舍人) 심세강(沈世綱)의 집에 오도자(吳道子)가 그린 소나무 병풍 열폭자리 하나가 있었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이 행랑채에 임시 살며 종노릇을 하더니 3年後에 돌아간다고 하며 말하기를 서울의 모대감(某大監)이 나를 보내어 그 소나무를 그린 병풍에 돈을 걸었으므로 내가 여러 해 동안 행랑채에 살았다 하니 이 일로 말미암아 단속하여 굳게 감추고 끝내 팔지 않았다고 한다.
〈명환(名宦)〉
심명덕(沈命德):정조조(正祖朝) 을사(乙巳)에 현감(縣監)이 되어 계묘갑진(癸卯甲辰)년 큰 흉년(凶年)의 여무(餘務)가 편안하게 바로잡아 고치는데 있으므로 호세(戶稅)와 납관미(納官米)를 탕감(蕩減)해주고 경포대(鏡浦臺)를 중건(重建)하였으며 또 사고요사(史庫寮舍)를 세우고 성첩(城堞)을 보축융기해세(補築戎器海稅)를 혁신(革新)하였으며 학궁(學宮)을 더욱 힘써 고치고 문묘(文廟)를 수리(修理)하여 문묘(文廟)의 후록(後麓)의 사태(沙汰)가 난 구덩이를 흙으로 메웠다.
〈선생안(先生案)〉 (부사(府使))
심규로(沈奎魯):순조신유(純祖辛酉)에 내임(來任)하여 임술(壬戌)에 사임(辭任)하였다.
심의복(沈宜復):정미(丁未)에 래임(來任)하여 동년(同年)에 사임(辭任)하였다.
심영섭(沈瑛燮):임인(壬寅)에 래임(來任)하여 동년(同年) 모상(母喪)을 당하여 사임(辭任)하였다.
〈절계(折桂)〉 (과학급제(科擧及第))
심 식(沈 湜):벼슬이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에 이르다.
심 준(沈 濬):홍치기유(弘治己酉)에 등과(登科)하여 벼슬이 호조좌랑(戶曹佐郞)이었고 찬성(贊成)에 추증(追贈)되었다.
〈연방(蓮榜)〉 생진시(生進試)의 향시합격(鄕試合格)
심 준(沈 濬):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沈):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덕숭(沈德崇):명종병오(明宗丙午) 생원시(生員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상달(沈三達):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 달(沈 達):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 복(沈 福):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능규(沈能圭):진사시(進士試)에 합격(合格)하였다.
심상용(沈相龍):성균박사(成均博士)였다.
심형진(沈衡鎭):성균박사(成均博士)였다.
〈무직(武職)〉
심승조(沈承祖):무과(武科)에 합격(合格)하였다.
〈효자(孝子)〉
심지렴(沈之濂):나이 겨우 13에 父母가 염병(染病)으로써 한때 중병(重病)을 앓고 있을 적에 아버지가 갑자기 기절(氣絶)하여 살 가망이 없자 단지관구(斷指灌口)하여 다행히 회생하니 사실(事實)이 조정(朝廷)에 알려져 포상(褒賞)하고 정려(旌閭)를 내렸으며 향년(享年) 84로 노직(老職)을 받았다.
심 진(沈 楱):어려서부터 능히 父母 섬기는 것을 알았으나 집이 가난하여 돈이 없으므로 스스로 품을 팔아 쌀을 팔아다 드렸고 나이 겨우 20에 어머니가 병(病)들자 단지상분(斷指嘗糞)하였고 때가 바야흐로 겨울인데 생선이 먹고 싶다하니 주야(晝夜)로 하늘에 빌며 울면서 求하자 갑자기 얼음위로 잉어가 튀어나와 잡아다가 바쳐 회생하였고 급기야 喪을 당하여는 三年동안 죽을 먹으니 사림(士林)에서 일제히 부영(府營)에 호소(呼訴)하여 세금(稅金)을 면제(免除)받고 포상(褒賞)을 받았다.
 〈열녀(烈女)〉
심 씨(沈 氏):최맹인(崔孟仁)의 처(妻)로 남편을 여의고 40餘年을 머리를 빗지도 않고 세수도 하지 않으며 곡(哭)하고 울기를 초상(初喪)때와 같이 하였다.
최 씨(崔 氏):심명(沈蓂)의 처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산골짜기에 피(避)하여 온 집안이 한곳에 숨었더니 적(賊)이 갑자기 와서 崔씨를 찾아내어 그 미색(美色)을 보고 끌고 나가 욕(辱)보이려고 하니 그 免치 못할 것을 알아차리고 집안사람을 크게 부르며 말하기를 내가 몸으로써 당할 터이니 부모는 그 틈을 타서 속히 피(避)하시오 하고 나서 크게 소리질러 말하기를 속(速)히 나를 죽여라 하니 적(賊)이 미색(美色)을 탐내어 갑자기 겁탈하려하자 崔씨가 마구 그 얼굴을 때리니 적이 칼을 빼어 목에 대고 통역자로 하여금 말하기를 내가 하는 바를 들으면 마땅히 죽이지 않을 것이요 또한 厚한 利益이 있을 것이라 하니 崔씨가 꾸짖으며 말하기를 나는 재상(宰相)집의 자부(子婦)인데 무슨 면목(面目)으로 더러움을 당하고 살겠느냐하고 발로 적의 허벅지를 차니 적(賊)이 그 유방을 베어도 듣지 않자 또 오른쪽 유방을 잘랐으나 소리를 더욱 사납게 내니 적이 굴복(屈服)시키지 못할 것을 알고 격살(擊殺)하는 동안에 한집안이 힘업어 온전히 살았다.
심씨(沈氏):최찬구(崔燦九)의 처(妻)로 나이 28에 남편의 상(喪)을 당하여 슬퍼함이 지나쳤고 여러 번 氣節하였으며 그 담제(禫祭)가 끝나자 먹지 않고 하종(下從)하니 사림(士林)에서 찬미(讚美)하였으니 사실(事實)이 속수삼강록(續修三綱錄)에 실려 있다.
심 씨(沈 氏):이면기(李冕箕)의 妻로 시어머니 喪을 당하여 3年동안 죽을 먹었고 남편의 병(病)이 위독(危篤)하자 하늘과 땅에 빌었고 운명(殞命)하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죽기로 스스로 맹세하였으나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아이를 위하여 가슴을 치고 땅을 두드리는 형상은 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피눈물을 흘리며 울뿐이고 자기 침실(寢室)에서 자결(自決)하니 사림(士林)이 그 효열(孝烈)에 감동(感動)하여 호소(呼訴)하여 부사(府使)와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장계(狀啓)를 올려 포상(褒賞)하였고 그 손자(孫子) 진황(震璜)도 모병(母病)에 작지주혈(斫指注血)하여 회생하게 하니 인리(隣里)가 효도(孝道)를 칭송(稱頌)하였다.
이 씨(李 氏):심동규(沈東圭)의 처(妻)로 남편의 병(病)에 하늘에 빌어 꿩을 얻었고 시어머니 病에 얼음을 깨어 잉어를 얻으니 士林에서 여러 번 감영(監營)과 암행어사(暗行御史)에게 글을 올려 부역(賦役)을 감면(減免)받았다.
〈충노(忠奴)〉
심 씨(沈 氏):김담(金譚)의 모친(母親)으로 나이 95에 시비 눌질정(侍婢 訥叱丁)도 또한 84였으나 모시고 봉양(奉養)함을 매우 부지런히 하여 女主가 돌아가자 복상삼년(服喪三年)을 태연(泰然)하게 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소리녀(所里女)는 수(壽)를 하였어도 효도(孝道)를 하고 심씨(沈氏)의 종은 늙었어도 충성(忠誠)을 하였다고 하였다.
〈기예(耆乂)〉
심덕하(沈德河):수직(壽職)으로 가선(嘉善)이었고 나이는 83이었다.
심진하(沈鎭夏):향년(享年)이 82이었다.
최윤필 처 심씨(崔允珌 妻 沈氏):향년(享年)이 90이었다.
〈효부(孝婦)〉
김 씨(金 氏):심원규(沈元圭)의 妻로 10歲에 모병(母病)을 당하여 단지주혈(斷指注血)하여 회생시켰고 20歲에 또 모병(母病)을 당하여 재단지주혈(再斷指注血)하여 회생하였으며 출가(出嫁)하여 부병(夫病)에 설단도천(設壇禱天)하고 고빙구어(叩氷求魚)하여 마침내 평상(平床)을 회복(回復)하니 영읍(營邑)과 예조(禮曹)에서 여러 번 완문(完文)을 얻었고 특별(特別)히 조세(租稅)를 면제(免除)받았다.
〈열부(烈婦)〉
심 씨(沈 氏):최의규(崔義圭)의 妻로 남편이 이질(痢疾)로 앓아 여러 달 동안 정성들여 구호(救護)하였으나 고종정축년(高宗丁丑年) 가을에 상(喪)을 당하자 시신(屍身)을 안고 같이 누어서 먹지 않고 哭하지도 않고 대렴한 이튿날 순절(殉節)하였으나 정려(旌閭)을 命받지 못하였으니 애석(哀惜)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