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위음로(絡緯飮露: 베짱이가 이슬을 마시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해질녘 선선한 초가을 바람이 목덜미에 느껴지기 시작하면 우리 귀에는 베짱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매미울음소리가 베짱이 소리로 바뀌면서 이제 가을이 깊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베짱이는 소리로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이다.
나무와 언덕이 대각선으로 화면을 양분하는 특이한 구도로 그려진 그림이다. 언덕에는 풀이 가득 덮여있고 그 경사진 풀밭에 세 마리의 베짱이가 모여 있다. 어미와 새끼 베짱이 두 마리가 풀밭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언덕 위에는 늙은 산수유 나무 한 그루가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두 팔을 벌린 듯 한껏 가지를 아래 위로 벋쳤는데 줄기와 굵은 가지는 먹색으로, 새로 난 잔 가지는 녹색으로 그렸다. 이 나무를 덩굴이 칭칭 감고 보기 좋게 늘어져 있고, 나무 좌우로는 차조기(蘇葉)가 아름다운 주황빛을 발산하며 언덕의 녹색 풀들과 홍록(紅綠)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밑에는 아직 단풍들지 않은 풀잎들이 언덕의 경사를 따라 아래로 벋어있다.
초가을 저녁 뒷동산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담하면서 정답게 그려낸 초충도이다. "심사정씨(沈師正氏)"라는 백문인장과 "이숙(頤叔)"이라는 주문인장이 차례로 찍혀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