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호접(薔薇蝴蝶: 장미와 나비)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2-1791)은 《현재화첩(玄齋畵帖)》의 발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현재는 그림에 있어서 능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화훼초충을 가장 잘하였고, 그 다음이 영모이고, 그 다음이 산수이다. (玄齋於繪事, 無所不能, 而最善花卉草蟲, 其次翎毛, 其次山水)."
현재와 합벽첩(合壁帖)을 남길 정도로 현재와 친하게 지낸 표암이 현재의 그림 중에서 화훼초중을 제일로 치고 있다.
십우헌(十友軒) 서직수(徐直修, 1735-?) 또한 《해동서화축(海東書畵軸)》발문에서 여러 화가들을 평하며, "현재는 화초봉접이 볼만하다(玄齋花草蜂蝶窺)"고 평하고 있다. 남아있는 현재의 많은 화훼초중 그림이 위와 같은 당시의 평을 뒷받침해준다.
현재의 화훼초충 기본적으로 중국의 화보인 『개자원화전』에 들어있는 많은 화훼초중을 모범으로 삼아 이루어졌다. 화가의 화도수련이 임모와 사생을 근본으로 한다면 현재 역시 당시 최신의 화보였던 『개자원화전』을 부지런히 임모하고 자연에서 사생을 병행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화훼 초충은 자신의 문기(文氣)를 필묵으로 표출하는데 알맞은 대상으로서 더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대상과 소재들은 자신이 화도(畵道)공부에 사용한 화보에 많이 나와 있었고, 현재는 이것을 적절하게 응용하고 빌려올 수 있었다.
이렇게 사물들이 문사(文士)가 뜻을 표출(寫意)하는 소재로 사용될 때 "터럭 하나까지 닮게 그리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현재의 그림에서 터럭 하나까지 닮게 그린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강 형상을 갖추고 거기에 자신의 뜻과 감흥을 담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 <장미호접>의 장미꽃도 『개자원화전』에 그 소재가 실려 있다. 장미는 우리 전통 화훼화에서 보기 힘든 꽃이다. 화면 가득히 두 송이의 붉은 장미가 만개해 흐드러져 있고, 한 송이는 막 꽃봉오리를 펼치려는 순간이다. 이 장미꽃밭에 커다란 날개를 가진 호랑나비 한 마리가 부드럽게 날아오고 있다.
장미의 꽃과 줄기와 잎은 모두 몰골법으로, 나비는 구륵전채법으로 그렸다. 장미꽃잎은 농담의 변화가 잘 되어 입체감 있게 보이고, 그 꽃잎과 같은 붉은 색으로 줄기에는 가시를 질서있게 박아 넣어, 장미가시가 뚜렷게 드러났다. 잎맥도 역시 붉은 선으로 간략히 그었다. 이 그림은 《현재첩》에 들어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