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근동죽(雲根凍竹: 바위틈에 얼어있는 대나무)
조선중기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에 의해서 확립된 조선묵죽화의 전형은 조선후기에도 수운(岫雲) 유덕장(柳德章, 1675-1756)등에 계승되면서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심사정이 등장하면서 조선의 묵죽화풍이 일변하게 되니, 사의성(寫意性)을 중시하는 묵죽화가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시대 묵죽화의 전개에서 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운근동죽> 역시 사생의 바탕 위에 기세를 온축시키면서도 생동감을 고양시키는 데 주력했던 기존의 묵죽화 양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파필로 던져내듯 쳐낸 죽엽의 묘사에서 사생에 대한 배려는 물론 서예적 법식을 준수하려는 의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대나무를 통해 작가의 심의를 표현하였을 뿐이다.
이 그림은 관지에 적힌 바와 같이 신사년(辛巳年, 1761)겨울에 그려진 것으로, 메마르고 갈라진 죽엽의 묘사에서 계절감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렇듯 추위에 얼어붙은 대나무는 군자의 상징으로 눈을 이고 있어도 꼿꼿함을 잃지 않는 대나무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이를 묘사한 기존의 묵죽화와는 상반된 모습임에 틀림없다. 바위 틈에 어렵사리 뿌리를 내려 연명하다 혹독한 겨울을 만나 상처받고 움추려든 대나무의 모습을 통해 현재 자신의 처지와 심회를 담아내고 심었던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