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만정(梅月滿庭: 매화와 달이 뜰에 가득하다)
현재는 표암 강세황과 함께 조선후기 사군자화의 전개를 주도했던 화가였다. 묵죽이나 묵매와 같은 사군자화는 조선중기 크게 유행하였고, 오히려 조선후기에는 진경산수화나 풍속화 등의 유행에 밀려 상대적으로 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에 의해 사군자 그림이 재조명받으며 다시 화단의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남종문인화를 자신의 지향처로 표방한 현재에게 사군자는 자신의 회화이념을 구현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소재였기 때문이다.
이 <매월만정>도 그 중 하나이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매화나무 한 그루가 고고창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뒤로는 둥근 달 하나가 매화를 구경하듯 구름사이로 살포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추위가 채가시지 않은 초봄의 청신(淸新)함과 그윽한 시정(詩情)을 담아내는 데에는 매화, 그 중에서도 달과 어우러진 매화만큼 좋은 소재를 찾기 힘들다. 이런 이유로 달과 매화를 함께 그린 월매도 형식은 조선시대 사람들이 가장 즐겨 그리고, 완상하던 묵매도의 형식이었다. 조선시대 최고의 묵매화가로 손꼽히는 설곡(雪谷)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의 <월매도>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데 <매월만정>은 조선중기 묵매화와 같이 근엄방정(謹嚴方正)하지도 않을 뿐더러 온축된 기세(氣勢)같은 것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대신 시적인 정취나 다양한 필묵의 운용을 통해 묵희적(墨戱的) 사의성(寫意性)이 강조되어 있을 뿐이다. 묵매화에 대한 미적 지향이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대담하고 거친 필치로 묘사한 매화의 가지와 줄기는 조선 중기 묵매화에서 보았던 강인함이 배어있어 온아하고 평담한 의취를 중시했던 중국의 명대(明代) 오파계(吳派系) 묵매화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명대 오파계 문인화풍을 추구하면서도 강경(剛勁)하고 명징(明澄)한 조선적인 미감을 절충시킨 현재 회화의 전반적인 특징이 이 묵매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