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룡등천(雲龍登天: 구름속 용이 하늘로 오르다)
용은 중국문화권을 대표하는 성수(聖獸)인데, 권위(權威)와 벽사(辟邪)의 상징으로 궁중(宮中)이나 사원(寺院)벽화의 소재로 자주 그려지곤 했다. 양(梁)나라의 장승요(張僧繇)가 금릉(金陵: 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벽에 용을 그리고 마지막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승천하였다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주는 고사이다. 후대에 이르러 용 그림이 편화(片畵)나 족자(簇子) 형태의 감상화(鑑賞畵)로도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그리는 화가까지 나오게 되었다. 남송(南宋)대에 활동했던 진용(陳容)이 바로 그런 인물로 구름에 쌓여 수면 위를 나는 그의 용그림이 『고씨회보(顧氏畵譜)』에 수록될 정도였다.
<운룡등천(雲龍登天)>은 이 『고씨화보(顧氏畵譜)』에 실린 진용의 그림을 보고 현재가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화보의 용그림과는 달리 하단부의 수파(水波)는 배제하고 오로지 구름 속을 유영하는 용의 모습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하여 주제의 집중도를 높이고 화면 전체에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용 그림은 이렇듯 구름과 같이 그려야 제격이다. 『역경(易經)』에서는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 (雲從龍, 風從虎)"라 하였으며, 고려의 시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도 "용은 구름을 타지 않으면 그 영이(靈異)함을 신묘하게 할 수 없다."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용과 구름은 불가분의 관계였던 것이다.
현재도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둔 듯 전체 화면에서 구름의 비중을 한껏 높여 그려 놓았다. 또한 판각(板刻)으로 처리된 화보(畵譜)의 여건상 윤곽선으로만 표현되었던 구름을 먹의 번짐을 통해 몰골(沒骨)로 묘사하고 있는데, 발묵(發墨)과 파묵(破墨)이 어우러지며 내는 자연스런 효과는 현재 특유의 장처이다. 이 그림의 원래 작자인 진용도 용을 그릴 때 발묵(潑墨)으로 처리한 구름의 묘사가 압권이었다고 전해지니, 현재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화보를 참고하면서도 이를 재해석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현재의 식견(識見)과 화기(畵技)가 새삼 돋보이는 작품이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