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홍청(鼠囓紅菁: 쥐가 홍당무를 파먹다)
조선시대 화훼영모도에서 신사임당과 겸재의 쥐는 수박을 파먹고 있었는데, 이제 현재의 쥐는 홍당무를 파먹고 있다. 현재는 이 그림말고도 홍당무를 파먹고 있는 쥐 그림을 하나 더 남기고 있다. 이후 현재를 이은 최북(崔北)도 쥐가 홍당무를 파먹는 그림을 남기고 있다.
화면 중심에 잎이 무성한 배추 한포기가 있고, 그 왼쪽에는 두 개의 홍당무가 반쯤 땅 위로 노출되어 있다. 이 중 큰 뿌리에 회색빛의 생쥐 한 마리가 매달려 파먹고 있고, 그 뿌리에서 꽃대 하나가 길게 올라가 예쁜 꽃을 피우고 있다. 땅에는 작은 풀들이 무성하다.
맨 오른쪽 배추의 잎을 보면, 잎 앞면은 먹빛에 가까운 녹색으로 칠하고, 잎 뒷면은 좀더 옅게 칠해 잎이 뒤집어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잘 구분하여 그려냈다. 왼쪽의 두 개의 홍당무의 잎은 연녹색을 썼는데, 홍당무 윗부분은 진홍색을 칠하고 아랫 부분은 옅게 하여 머리와 몸통의 색채가 서로 다른 모습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그림의 모든 대상이 담담한 색과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편안한 기운이 그림 전체에 감돌고 있다.
화면 왼쪽 위에 예서로 "노년의 붓 솜씨가 젊은 시절의 세화만 못하니 한탄스러울 뿐이다. (暮年落筆, 不如少時細畵, 可恨也已.)"라고 써놓았다. 현재가 자평한 것인 듯하다. 하지만 노년의 무르익은 솜씨가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이 이 그림을 더 격조 높게 만들어 주었다. 글씨 끝에는 "현재(玄齋)"라는 주문방형과 "심사정인(沈師正印)"이라는 백문방형 인장이 차례로 찍혀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