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녹음천(雙鹿陰泉: 사슴 한 쌍이 샘물을 마시다)
산 속 암벽 아래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두 마리의 사슴이 물을 마시러 그 곳을 찾아온 모양이다. 뿔을 가진 수놈은 계곡물에 목을 축이고 있고, 수놈보다 몸집이 작은 암놈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슴이 우리 미술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신석기 시대 유물인 울주 천전리 암각화에서부터이다. 이렇듯 사슴은 예부터 생산의 풍요를 나타내는 중요한 동물로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동물이었다. 이후 도교의 신선사상의 영향을 받은 십장생의 사물에도 사슴이 포함되어 전통미술의 중요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현재가 그린 영모화는 이렇게 암수 한 쌍으로 많이 나타난다. 앞의 소 그림이 그렇고 뒤의 토끼 그림 또한 그렇다. 사선으로 올라간 바위절벽의 바깥부분은 푸른색으로 물들이고 작은 선들을 중첩하여 바위틈에 솟아난 풀들을 표현하였다. 사슴이 발 딛고 있는 땅과 바위도 푸른색으로 물들인 후 작은 점들을 찍어 변화를 주었다.
그런데 바위 절벽에서 나온 꽃과 잎이 너무 크게 그려져서 사슴과의 비례가 잘 맞지 않는 실수를 범하였다. 무리하게 빈 공간을 채우려고 한 결과일 것이다. 더군다나 나뭇잎 모양의 인장을 허공의 잎과 물가의 바위 사이에 찍어 답답한 느낌을 준다. 여백이 너무 커진 것을 보완하려다 저지른 실수다. 이 그림은 《현재첩(玄齋帖))》에 실려 있다. (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