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산야수(窮山野水; 깊은 산과 들물)
이 그림은 화보에 보다 충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고시화보(顧氏畵譜)』 제3책에 실린 원대 예찬(倪瓚)의 그림을 본따 그린 것이다. 후경을 이루는 산의 생김새 하나하나와 흐름이 그대로 화보풍이다. 왼편 강 건너 높은 산이 바다사자처럼 표현된 것이나 가운데 작은 산이 삼각형인 것까지 같다. 그 뒤로 원산은 담묵으로 우려 그려냈는데 그 역시 기본 구도는 같다. 중간에 넓은 물길을 두고 앞에 고목나무숲이 우거진 흙언덕이 있는 것 같다. 토파는 매우 부드럽고, 나무들은 굵은 둥치에 잔가지가 많아 스산한 분위기를 돋운다. 역시 화보 그림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취를 이루어낸 현재 특유의 그림이다.
현재의 관지는 오른편 끝에 간단하게 붙였으나 화면의 중앙에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의 제발이 길게 들어 있다.
"궁벽한 산골 들판을 흐르는 물가에, 진실로 황량하고 쓸쓸한 아취가 있다. 다만 나무 사이의 가까운 봉우리들은 미인의 흉터 자국 같다. 어찌 텅빈 들판에 담박하게 가라앉은 색조로 그리지 않았는가. 아깝구나. (窮山野水之濱, 固自有荒凉寥落之趣. 但樹間近峰, 如美人瘢痕, 何不作曠埜澹沈色也. 惜哉.)"
원경의 산봉우리가 근경의 나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을 지적하며 광야의 담박한 맛을 살려낼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진심으로 아껴주는 평자의 예리한 눈이 있어 화가는 날로 고심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현재(玄齋)"라는 관서 밑에 "현재(玄齋)"라는 방형주문 안장과 "이숙(頤叔)"이라는 방형백문 인장이 나란히 직혀 있다. (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