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항관어(花港觀漁: 꽃피는 물가에서 고기잡이를 구경하다)
영산홍이 흐드러지는 어느 봄날,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천렵을 나섰다. 낙락장송이 우거져 그늘을 드리운 언덕배기에는 나이든 장로 서너 사람이 앉아 고기잡이 구경에 한참이고 개울속에서는 두 세 패가 그물을 들고 통발을 잡고 고기를 잡느라 여념이 없다. 동자는 심부름을 기다리는 듯 두손을 맞잡고서 있는데 느지막이 한 노인네가 일행에 합류한다.
주산이 흘러내려 중경에 닿으니 나지막하게 떨어져 나온 토파 주위로 물길이 싸고 돈다. 언덕에서 솟아난 소나무 두세 그루가 중경을 꽉 채워 중심을 이루는 사이사이로 붉은 봄꽃과 연록색 새잎이 생기를 북돋운다. 청록색 및 각색 먹점으로 형형색색의 나뭇잎을 쳐내니, 멀고 가까운 산골짜기는 청록색으로 가득 찬다. 녹음 방초가 우거진 것을 상징한 것이다. 오른쪽 아래 물가에는 갈대 숲이 무성하여 화면을 안정시켜 준다.
현재가 남종화풍의 화면 구성을 구사하면서 우리 풍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접목시켜 한 폭의 풍속화를 이루어낸 것이 이 그림이다. 비록 동자는 쌍상투를 틀었지만 우리 풍경이 물씬 묻어난다. 꽃피는 물가에서 고기잡이를 본다는 화제가 어울리는 그림이다.
화면을 빈틈없이 채웠기 때문에 "화항관어(花港觀漁)"라는 화제와 "현재(玄齋)"라는 관서가 모두 옹색하게 들어섰고 "현(玄)", "재(齋)"의 나란한 방형백문 인장도 비좁다. 아래쪽에 "심사정인(沈師正印)"이라는 방형백문 인장과 "이숙(頤叔)"이라는 방형주문 인장이 또 찍혀 있다. (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