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려심매(騎驢尋梅: 나귀타고 매화를 찾아가다)

당(唐)의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은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여 잔설이 남아있는 추운 겨울날 매화를 찾기 위해 장안(長安)의 동쪽 파교(灞橋)를 건너 설산(雪山)에 들어갔다 한다. 이런 낭만적인 고사(故事)는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림의 소재로 애용되었으니, 『고씨화보(顧氏畵譜)』나 『당시화보(唐詩畵譜)』등에도 이 얘기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 <기려심매>는 이런 그림들을 참고로 그린 전형적인 화보풍의 그림이다.

중년의 고사(高士)가 나귀에 몸을 싣고 매화 찾기에 나섰다. 고사의 두툼한 옷차림새는 아직도 한기(寒氣)가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임을 암시해준다. 그래도 이런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았던 듯, 고사는 산속 오솔길가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홍매(紅梅) 두 그루를 발견한다.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소담하게 피워낸 매화를 바라보는 고사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잔잔히 번져온다. 멜대에 짐을 메고 뒤따르던 동자(童子) 역시 반가움이 역력한 말똥한 눈으로 매화를 바라본다. 반면 나귀와 이를 끄는 구종(驅從)은 매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겨울 산행이 고되기만 한듯 침울한 표정이다.

그림의 소재나 인물의 설정 등은 중국의 화보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심사정 특유의 표일(飄逸)한 필법과 능숙한 선염으로 처리한 경물의 표현은 겨울의 스산한 분위기를 보다 성공적으로 묘사해내어 무미한 화보의 그림과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상반된 시선 처리를 통해 서정성을 배가시키는 한편, 감상자로 하여금 더불어 매화를 찾는 일에 끌어들인 것들은 역시 화보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가의 재치이다. "현재사(玄齋寫)"라는 관서(款書)아래, "심사정이숙인(沈師正頤叔印)"이라는 방형백문(方形白文)의 인장을 찍었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