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섬자희(海蟾自戱: 유해섬이 혼자 놀다)
심사정은 조선후기 문인화가 중 가장 많은 도석인물화를 남기고 있는데, 여기 등장하는 해섬자희는 그가 가장 즐겨 그리던 소재이다. 삼국시대 오(吳)나라 때 신선으로 두꺼비와 곤충들을 맘대로 부려 춤을 추게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게 했다는 갈현(葛玄)은 하마선인이라 하여 많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흔히 그리는 갈현이라기 보다는 유해(劉海)를 그린 것으로 보인다.
유해는 본명이 유현영(劉玄英)이며, 호는 해섬자(海蟾自)로 후량(後梁) 연왕(燕王)때 재상을 지냈다. 하루는 도인이 찾아와 달걀과 금전을 섞어 쌓으면서 속세의 영욕이 이처럼 위태롭고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자, 깨달은 바가 있어 관직을 버리고 도를 닦아 신선이 된 인물이다. 그는 세상 어느 곳이나 데려다 줄 수 있는 세 발 달린 두꺼비를 가지고 다니는데, 이 두꺼비가 가끔 심술을 부려 우물 속으로 도망치면 유해는 끈에 금전을 달아 낚아 올리곤 했다고 한다.
유해와 관련되어 전해지는 두꺼비나 동전에 대한 이야기는 흔히 재물과 행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현세구복적인 성격이 강한 조선후기 도석인물화에 자주 등장하게 된다. 도석인물화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을 보였던 현재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 유해의 고사를 해석하고 묘사하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맨발, 정강이가 드러날 만큼 헤지고 거친 옷을 걸친 남루한 신선의 모습은 아마도 거지의 행색으로 표현되는 또 다른 신선 철괴(鐵拐)에서 착안한 것이라 생각된다. 두꺼비를 윽박지르는 듯한 신선의 모습으로는 아마도 험상궂은 모습의 철괴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던 듯하다.
거칠고 강렬한 필법과 대담한 묵법에서 명대 광태사학(狂態邪學)으로 불리던 오위(吳偉)나 장로(張路)의 필묵법과 유사한 면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김명국(金命國)으로 대표되는 조선중기 도석인물화풍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보인다. "현재(玄齋)"라는 방형주문 인장과 "이숙(頤叔)"이라는 방형백문 인장이 나란히 찍혀 있고, 그 아래로는 수장인인 "김용진가진장(金容鎭家珍藏)"이 찍혀 있다. 『근역화휘』속에 들어 있는 그림이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