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포(三日浦)
외금강 신계사(神溪寺)로부터 흘러오는 신계천(神溪川)이 북쪽으로 흐르다가 법기봉(法起峯)의 36개 연봉(連峯)에 가로막혀 물길을 틀며 생긴 호수가 삼일포(三日浦)다. 신라의 국선(國仙), 花郞)인 영랑(永郞) ․ 술랑(述郞) ․ 안상(安祥) ․ 남석행(南石行)이 이곳에 들렀다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3일동안을 머물렀기에 삼일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심사정이 언제 금강산을 다녀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1764년 반송지(盤松池)에 살고 있던 심사정을 방문한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기록에 의해 그 이전에 이미 금강산을 가 보았음을 알 수 있다. (『靑莊舘全書』卷6, 『觀讀日記』) 그러므로 여기 보이는 이 그림은 심사정이 직접 금강산에 가서 실경을 보고 그린 그림일 것이다. 심사정의 다른 그림들보다 더욱 사생의 느낌이 강한 것으로도 그런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삼일호(三日湖)를 한 화면에 담기 위해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는데, 호수 가운데 우뚝하게 서 있는 정자가 화랑들이 머물렀다는 사선정(四仙亭)이다. 그림의 왼편에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제화시가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의 글씨로 적혀 있다.
"육육봉(六六峯) 밖으로,
십주(十洲)가 아득하구나.
물결 넘실대는 넓은 호수에,
완연히 중앙에 섰으니,
이것이 사선정의 절묘함이다.
3일을 놀고도 싫지 않았고,
여섯 글자를 남겨 없어지지 않았으니,
어찌 범상한 감정으로 제품(題品)하겠는가.
(六六峯外, 十洲淼矣. "瀲平湖, 宛在中央, 此四仙亭之爲妙也. 遊三日不厭, 留六字不滅, 豈凡情可容題品.)"
화면 전체가 푸른빛으로 가득한데, 원경에는 법기봉의 36봉우리가 줄지어 서 있고, 사선정에 건너가려는 일행은 나룻배를 기다리고 있다. 호수 주위로 솟아있는 동글동글한 바위들은 모두 법기봉의 수많은 여맥들이 삼일호 수면 위로 솟구친 흔적이다. 곳곳에 피마준과 미점들이 사용되고 있다. 현재가 진경 화풍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었는지를 이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현재가 겸재의 제자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흡사 눈 내리듯 좀 먹은 부분이 삼일호의 겨울 경치를 연상하게 하는데, 손상된 부분이 좌우 대칭이라는 사실에서 반으로 접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성삼일포(高城三日浦)"라는 관서와 함께 "현재(玄齋)"라는 방형주문의 인장이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