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거열락(山居悅樂: 산에 사는 즐거움)
중국문화권에서는 회화 학습의 방도로 고화(古畵)의 임모(臨摹)를 중요시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고화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본받고자 하는 작가의 의취(意趣)를 빌려 창작에 응용하는 방작(倣作)으로 발전하게 된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형태로 임모와 방작이 이루어져 왔다. 심사정은 조선시대 화가중 가장 많은 방작(倣作)을 남긴 화가이다. <산거열락>은 "의동복원(擬董北苑)"라고 쓴 관서(款書)의 내용과 같이, 동원(董源, 907-962)의 산수화를 방작(倣作)한 것이다. 동원은 남종문인화의 중조(中祖)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남종문인화의 직접적인 계승을 자임하고 나선 심사정이 동원의 산수화를 임모하고 방작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자, 자신의 지향처(指向處)를 표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산거열락>은 낮고 부드러운 연산(連山)과 연람(煙嵐)이 자욱한 강남의 수촌(水村)을 평원(平遠)의 시각법과 피마준(披麻皴)으로 묘사한 동원 산수화풍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배경으로 고사(高士)의 한거(閑居)를 주제로 한 『고씨화보(顧氏畵譜)』에 있는 동원의 산수화를 모본(摹本)으로 한 결과이다. 경물의 위치와 표현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 전적으로 화보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맑고 평온한 설색(設色)과 능숙한 피마준으로 심산(深山)이 아닌 수촌(水村)의 풍광을 묘사한 것은 화보와는 다른 모습으로 동원의 강남산수(江南山水)에 대한 심사정의 이해 수준을 보여준다. 방형주문(方形朱文)의 "현재(玄齋)"와 방형백문(方形白文)의 "이숙(頤叔),"두 방의 인장을 찍었다. (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