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모설(江天暮雪: 강 위의 저녁 눈)
한 겨울 강 위에 눈보라가 날리고 있다. 모자를 쓰고 도롱이를 걸친 사공이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데, 강변의 수풀들이 바람에 누인 방향과 사공의 도롱이가 날리는 방향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보아 방향이 일정치 않은 왜바람이 불고 있는 듯 싶다. 강에 닿아 있는 높은 절벽에는 군데군데 아직 푸른 생명들이 매달려 힘겨운 겨울을 나고 있다. 절벽 너머에 자리한 정자는 흰눈을 함빡 뒤집어 쓰고 있는데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모습이다. 고려 무인정권기의 문신이었던 이인로(李仁老, 1152-1220)는 이러한 풍경을 다음처럼 표현했다.
"눈의 뜻에 교태 많아 물에 내리기 더딘데,
저 수풀 먼 그림자는 이미 아득하구나.
도롱이 입은 늙은이 날 저무는 줄 모르고,
동풍에 버들꽃 날리는 때라 잘못 말하네.
(雪意嬌多着水遲, 千林遠影已離離. 蓑翁未識天將暮, 誤道東風柳絮時.)"
(『東文選』 卷20, 『李仁老-宋迪八景圖』)
대개의 경우 <강천모설>은 계절 상으로 겨울을 표현한 그림이기 때문에 소상팔경의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심사정 역시 가장 마지막에 이 그림을 배치해서인지 다른 그림들과 다은 인장을 사용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다른 소상팔경에는 모두 그림의 제목과 함께 "현재(玄齋)"라는 방형주문과 "심사정인(沈師正印)"이라는 방형백문의 인장 두개가 있었지만, 여기에는 "현재"라는 관서가 더 추가되었고, "현(玄)" "재(齋)"라는 방형백문의 인장이 각각 한 글자씩 찍혀 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도로 "심씨현재(沈氏玄齋)"라는 방형주문의 인장이 왼편 하단에 마감하는 듯한 모습으로 큼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건묵(乾墨)의 대담하고 강렬한 필치를 사용하여 메마른 겨울의 황량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