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추월(洞庭秋月: 동정호의 가을 달)
호북성(湖北省) 무한(武漢)의 황학루(黃鶴樓), 강서성(江西省) 남창(南昌)의 등왕각(滕王閣)
과 함께 중국 강남(江南)의 3대 명루(名樓)인 악양루(岳陽樓)는 두보(杜甫)의 시(詩) 『등악양루(登岳陽樓)』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수군(水軍)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지은 열군루(閱軍樓)가 그 기원이었으나, 동정호를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라는 점 때문에 악양루는 동정호의 빼어난 경치를 즐기려는 문익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 역시 동정호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동정호가 천지 간에 망망하니,
아득한 푸른 바다 가고 올 줄 모르네.
밤 되니 찬 물결 금빛으로 출렁이고,
휘영청 밝은 달은 군산을 비춘다.
(洞庭茫茫天地間, 遙通碧海去無還. 入夜滄波金不定, 依依明月照君山.)"
(『東溟集』 卷2, 「題瀟湘八景圖-洞庭秋月」)
심사정 역시 동정호를 그리며 악양루의 우뚝 솟은 모습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근경의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악양루인데, 높은 누대 위에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악양루의 모습은 조선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참으로 중국적인 건물이다. 이 건물은 아마도 『개자원화전』의 「인물옥우보(人物屋宇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산수화에서 집을 그리는 것은 사람의 얼굴에 눈과 눈썹을 그리는 것과 같다며 집을 정밀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은 어린아이가 흙장난하는 것과 같다고 한 『개자원화전』의 지침을 따르기라고 하듯, 심사정은 동정호 그림에서 악양루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다. 맞배지붕 혹은 팔작지붕이 대부분인 조선의 가옥과는 달리 사면으로 지붕을 낸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악양루 아래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듯 선비 일행이 동정호 물 위에 떠 있다. 여러 척의 돛단배들은 동정호의 수면 위에 깔려 있는 구름에 잠겨 그 모습이 희미하고, 그 너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동정호 속의 섬인 군산(君山)이다. 어스름프레하게 걸린 달이 내뿜는 차가운 달빛으로 동정호의 수면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