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사만종(烟寺晩鍾: 안개 낀 절의 저녁 종소리)
우리나라에서 소상팔경이 그려진 것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기록으로는 문종(文宗, 재위 1170-1197)이 문신들에게 소상팔경시를 짓게 하고 화원(畵員)인 이광필(李光弼)에게 소상팔경도를 그리도록 한 것이다. (『槿域書畵徵』 卷2, 李光弼條) 현재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실제로 그림이 전해지지 않고 있어 그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늦어도 고려시대 중반부터 소상팔경은 산수화의 중요한 화제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 <연사만종>은 안개 낀 절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표현한 그림이다. 조선전기에 문장과 함께 송설체(松雪體)에 뛰어났던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은 <연사만종>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은은한 종소리,
절은 어디에 있나.
다리 저는 나귀에 이끼 낀 길 깊은데,
저물녘 안개 속으로 들어간다.
(隱隱一聲鍾, 招提在何處. 蹇驢苔逕深, 暮入煙蘿去.)"
(『陽谷集』卷10, 「瀟湘八景-山寺暮鍾」)
화면의 중앙에 절이 자리하고 있다. 본전(本殿)과 높이 솟은 목조 탑으로 보아 규모가 상당하다. 절 뒤로 안개에 의해 구분된 원산(遠山)과 절을 안고 있는 바위산의 표현 등은 전체적으로 『개자원화전(芥自園畵傳)』에 있는 왕몽(王蒙)의 운두준법(雲頭皴法)을 변용한 심사정 고유의 표현법이다. 이것은 《표현양선생연화첩》의 심사정 그림 〈고산소사(高山蕭寺)〉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꿈틀거리는 듯한 필세가 형태의 질량감을 잘 나타내준다. 화면 하단에서는 나귀를 타고 절을 찾는 사람이 이제 막 숲속으로 접어들고 있다. 숲은 키 큰 나무들로 이루어진 짙은 녹음인데, 역시『개자원화전』에 보이는 나무숲 표현법과의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