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시청람(山市晴嵐: 산시의 맑은 이내)
〈산시청람(山市晴嵐)〉은 비 개인 후 남기(嵐氣)에 들러싸인 산시(山市)의 정경을 표현한 그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산시청람〉이 소상팔경의 가장 첫 부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심사정의 그림에서는 세 번째에 등장한다. 송적(宋迪)에 의해 정형화 된 화제(畵題)로 그려지기 시작한 소상팔경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고려 중기부터 이에 대한 화제시가 지어지고 그림으로 그려졌다는 것이 기록으로나마 전하고 있다.
고려 후기 원에 가서 성리학을 배워온 신진세력의 대표였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역시 소상팔경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현하였다. 이제현의 〈산시청람〉에 대한 제화시를 살펴본다.
"아득한 숲 아지랭이 차가운데,
숲 속의 은은한 누대비단이 가렸구나.
어이하면 바람이 땅을 휩쓸어,
나에게 왕가(王家: 宋의 王詵)의 착색산(着色山: 산수화)을 돌려주겠나.
(漠漠平林翠靄寒, 樓臺隱約隔羅紈. 何當卷地風吹去, 還我王家着色山.)"
(『益齋亂稿』卷3, 「和朴石齋孝修尹樗軒奕用銀臺集瀟湘八景韻-山市晴嵐』)
중경에 자리한 산시에는 여러 채의 집들과 함께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 두 그루가 시선을 끈다. 마을을 찾는 사람들은 깊은 계곡을 가로 질러 놓인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다리 너머에서 떨어지는 힘찬 물줄기가 이들의 마음을 씻어주듯 장쾌하고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다. 멀리 마을 뒤로 우뚝 솟은 절벽과 마을을 떠안고 있는 바위들에 사용된 부벽준(斧壁皴)은 심사정이 자신의 화법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서 사용한 준법(皴法)이다.
또한 이 그림에서는 전체적으로 바위의 잘게 부서진 결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앞서 살펴본 《방고산수첩》의 〈장강첩장〉과 동일한 표현법이다. 즉 『개자원화전』에 있는 유송년의 바위 표현법보다 좀 더 세밀하고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바위의 질량감이 잘 묘사되었다. 이 화첩의 모든 그림들에는 공통적으로 각 그림의 제목과 함께 동일한 인장이 사용되고 있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