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강운산(煙江雲山: 안개 낀 강과 구름낀 산)
《방고산수첩(倣古山水帖)》의 3번째 그림으로 안개와 구름이 가득한 강과 산을 표현하였다. 화면을 가득 채운 산 너머로 깊숙한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 마을을 두었는데, 명(明)의 화가 구영(仇英)이 송원화(宋元畵)를 임모한 산수 그림과 흡사한 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화면의 한쪽만을 채우거나 대각선으로 이분(二分)하는 등의 남종화풍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북종화의 대관산수를 연상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표현하는데 사용한 횡점(橫點)은 미가운산(米家雲山)의 분명하고 농도짙은 미점(米點)과는 다른 거친 발묵법이다. 결국 근본을 남종화에서 차용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자신의 안에서 다른 여러 요소들과 융합하여 자신만의 표현법으로 다시 창출하고 있는 심사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깊이 있는 심원법(深遠法)으로 그렸는데, 왼편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깊은 산속으로 이어진 채 안개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오른편 나루에는 짐을 가득 실은 배가 이제 막 마을에 도착했고, 돛을 펼친 다른 배는 바람을 맞으며 나루를 떠나고 있다. 쪽 빛 먼 산은 이 그림에서도 심사정의 특징을 보여주며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안개와 구름에 잠겨 있는 고즈넉한 마을이 짙은 녹음과 어울려 편안하고 청량한 느낌을 준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