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산유서(廬山幽棲: 여산에 숨어살다)
여산(廬山)에 은거하는 고사를 그린 그림은 산수화의 소재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여산은 중국 강서성(江西省) 북부에 있는 높이 1600미터의 명산이다. 주나라 때 광속(匡俗)이 이곳에 은거하였는데 정왕이 사자를 보내 찾게 하였더니 이미 신선이 되어 빈 오두막(廬)만 있어서 여산이라 했다 한다. 그래서 광려(匡廬)라고도 한다. 풍경이 매우 맑고 기후가 온화하며 곳곳에 명승이 많다.
일찍이 동진시대에 혜원(慧遠)선사가 이곳 동림사(東林寺)에서 승속 123인의 당대 명사들을 모아 백련(白蓮)염불결사를 맺은 이래 명사들의 이상적인 은거처로 인식되었다. 도연명(陶淵明)이 살았던 정절(靖節) 서원이 있고, 주자(朱子)가 경학을 강론한 백록동(白鹿洞) 서원이 있으며 주돈이(朱敦頤)의 묘소가 있다.
이태백이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을 읊었던 폭포천(瀑布泉)이 있고, 백낙천(白樂天)이 시로 읊었던 향로봉(香爐峰)의 유애사(遺愛寺)가 있다. 혜원선사는 손님이 찾아와도 절대로 동림사 어구의 호계(虎溪)를 넘어서는 마중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인 도연명과 도사 육수정(陸修靜)이 찾아와 서로 얘기를 나누며 배웅하다보니 어느새 호계를 넘고 있었고, 이때 호랑이가 크게 울어 이를 알려줌으로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지니 이를 "호계삼소(虎溪三笑)"라 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림에서는 주산이 우뚝 치켜 솟아 있고 그 중턱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려 물길을 이루어 낸다. 키 큰 소나무가 서 있는 시냇가 절벽밑에 초가집 한 채가 보인다. 초옥 안 대청마루에서 난간에 지그시 기대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내 건너 절벽 밑으로 개울따라 난 길에는 길손 하나가 시동을 따라 찾아오고 있다. 지우(知友)를 기다리는 고사의 맑은 품성이 그들의 행로를 지켜보는 눈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여산유서(廬山幽棲)"라 자제(自題)하고 "현재(玄齋)"라는 관지와 "심씨이숙(沈氏頤叔)"이라는 방형백문 대형인장이 찍혀 있다. (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