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산춘일(關山春日: 관산의 봄 날)
양주팔괴(揚州八怪)중의 한 사람인 고기패(高其佩, 1672-1734)는 손가락 끝에 먹물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 지두화(指頭畵)로 유명한데, 그러한 고기패의 화풍이 여기 보이고 있다. 심사정이 그림의 오른편에 "지두백묘법(指頭白描法)"이라 하여 이 그림은 손으로 그렸다고 적어 놓고 있는 것에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고기패가 인물을 중심으로 산수화를 그리며 대담하고 강렬한 먹의 대비와 생략적인 표현 등의 특징을 보인 반면 심사정은 지두화라 믿기지 않을 만큼 세밀한 정경의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왼편 하단에서 중앙의 상단으로 시선을 끌며 전개된 절벽을 따라 가면 마지막에 관문 위에서 힘차게 날리고 있는 깃발과 마주친다.
일률적이면서도 매우 역동적으로 표현된 절벽의 바위 표현에서는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푸른 쪽빛의 상쾌함과 옅은 먹빛의 차분함, 그리고 연녹빛의 생동감이 부드러운 색감의 조화로 나타나고, 멀리 펼쳐진 마을의 정겨운 모습에서는 따사로움마저 느낄 수가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에 놓인 다리는 여유로움과 한가로움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처럼 시간이 정지된 느낌을 준다. 관문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오르는 사람이 왼편 하단에 미미하게 그려져 있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 같다. 왼편의 역동적인 근경과 오른편의 정적(靜的)인 원경이 뛰어난 구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는데, 따스한 봄날을 마음 속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 (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