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초사(深山草舍: 깊은 산 속 초가집)
심사정과 교유했던 인물 중에 가장 주목되는 사람이 바로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다. 비록 강세황이 32세(1744년)때부터 집안 문제로 처가가 있는 안산(案山)으로 내려가면서 심사정과의 직접 만남이 어려웠을 터이지만 둘은 그림에 관해 깊은 이해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심사정의 <모란도(牡丹圖)>와 <석류도(石榴圖)>에 강세황이 평을 하고 관서를 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으나, 여기 보이는 《표현양선생연화첩(豹玄兩先生聯畵帖)》을 통해 둘의 관계를 더욱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
이 화첩은 모두 26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세황과 심사정 외에도 갈은(葛濦)이라는 호를 사용하는 인물도 참여하여, 강세황의 작품은 글씨 3점, 산수화 2점, 사군자 3점이고, 갈은의 작품은 포도와 대나무 그림이 1점씩 모두 2점이다. 그 외 나머지는 모두 심사정의 작품으로 산수화 11점과 화조화 5점이다. 여기 보이는 <심산초사>는 화첩의 2번째에 해당하는 그림으로 다양한 녹색과 담묵(淡墨)을 통해 깊은 산중의 한적한 초가집을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고씨화보(顧氏畵譜)』에 등장하는 동원(董源)의 그림과 그 구도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어서 화보를 방작(倣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씨화보』의 동원 그림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세부 표현을 심사정이 자기 식으로 변용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고씨화보』에 등장하는 2층 누각의 집을 단층의 초가집으로 바꾸고, 왼편의 언덕을 화면 안으로 더 잡아당겨 더욱 깊은 산속임을 암시하고 있으며, 산세의 표현에서도 피마준(披麻皴)과 소혼점(小混點)을 사용하는 등 『개자원화전』의 필법을 응용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점차 자신만의 표현법을 창조해 가는 심사정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그림으로, 깊은 산중의 은둔 생활을 물기 머금은 녹색 산림 안에 운치있게 표현하고 있다. 화면 왼편에 "묵선(墨禪)"이라는 큼직한 방형백문(方形白文)의 인장이 있고 그 아래에는 "심사정씨(沈師正氏)"와 "이숙(頤叔)"이라는 작은 방형백문의 인장 두 개가 있다. (吳)